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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Nov 03. 2022

1933년생 어머니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어떤 세상일까

두 달 뒤면 91세가 되시는 내 시어머니는, 1933년생이시다.

이제 거의 못 들으시는 어머니께서, 지난 화요일 전화를 하셨다.


에미야, 밥 먹었어? 우리 애기 잘 놀지? 그래. 있다구? 집에 있어? 지금?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우리 애기'는 중학교 2학년, 15살이다.

물론 잘 논다. 학교도 잘 다니고 이제 5년 뒤면 군대에 갈 나이가 된다. 항상 같은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하던 대답을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지 않으신다.


그래. 좀 바꿔 봐라.


난 단박에 알았다. 어머니가 뉴스를 보셨구나.


서울에서 난리가 났드라, 우리 애기 집에 있지?


샤워 중인 아이를 굳이 욕실 문을 두드려 전화기를 넣어 줬다. 뉴스 보고 할머니가 전화하셨으니 얼른 받으라고. 다행히 아이도 허둥지둥 전화를 받아 들어갔다. 뭐라 뭐라 통화하는 게 들리지만 뻔하다. 어머니는 굵은 중저음의, 사춘기 손주의 목소리를 확인했으니 안도하며 끊으셨을 거다.





어머니는 뉴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40여 년 전, 광주 민주화운동 때 길바닥에 젊은이들의 시신이 누워있던, 그때 그 광경을 상상하셨을까. 자세한 내막은 잘 이해하지 못하시니 흡사 그렇게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와 나이가 같으신)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었다. 그때 광주 때, 강진에서 어디까지 차를 타고 가다가 어디서부터 걸어가셨는데, 이놈이 내 자식 같고 저놈이 내 자식 같고. 다 뒤집어 보며 그렇게 길을 걸어가셨다고.


어머니는 1933년생이시니,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셨다. 그리고 유년기에 광복과 전쟁과 분단을 겪으셨을 거다. 모두 어머니 10대 때 일어난 일이다. 내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그 모든 일들을 어머니는 모두 살아내셨는데, 어머니가 보시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떨까.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니 세상 살기 좋아졌을까, 아니면 아직도 저런 일이 있으니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똑같다 생각하실까.


오늘은 왠지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슬프지만 도란도란, 이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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