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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06. 2022

어머니의 방식

어머니를 해석하는 건 자식인 나의 몫

시댁에는 1년에 두 번의 제사와 두 번의 차례가 있었다. 

1년이면 4번, 형님과 어머님은 항상 켜켜이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고 송편을 빚고 나물을 볶았다. 나는 항상 늦게 퇴근하는 막내며느리였고 결혼 1년 후 출산, 아기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 나의 노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 시댁에 가면 형님과 어머니가 싹 다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고, 시누이 집에 가면 살림 베테랑 시누이들이 순식간에 모든 음식을 준비하셨다.


모든 음식 장만의 중심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어쩜 저렇게 얇은 전이 부쳐지나 싶게 얇디얇은 메밀전을 100장은 금세 부치셨고, 만두피도 손으로 직접 미셨다. 아들들이 설거지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저리 가라며 본인이 직접 하셨다. 어느 추석 날 가족 5인이 1인당 만두를 300개씩 빚었다고 하니, 친정어머니가 다음 추석 때는 만두피라도 사 가라고 하셨다. 만두피만 안 밀어도 시간이 반은 줄 거라고, 아마 어머님이 만두피 파는 걸 모르시나 보다고. 다음 명절에 어머님께 이 말을 전하니, '그래? 만두피도 팔아? 나 죽으면 사다 해.'라고 하셨다. 그래서 만두피는 계속 직접 밀기로 했다.




그렇게 비슷한 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어머니의 허리뼈가 부러졌고, 그 후부터 우리는 첫해에는 만두를, 다음 해에는 송편을, 또 다음 해에는 전을 사다 먹었다. 그렇게 하나 씩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제사를 한 번으로 줄이자 하셨고, 이제는 제사도 차례도 없는 집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던 데에는, 어머니가 한 해가 다르게 노쇠하신 것과 코로나의 영향이 컸다.


아들에게 설거지를 못 하게 하셨던 분, 메밀전병은 꼭 집에서 부치셨던 분, 만두피는 꼭 집에서 미셨던 분, 그런 분이 모든 걸 없애 버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쉬워하지 않으신다. 명절 날 새벽이면 어두운 부엌에서 밤을 까고 마늘을 까시며 나에게 '더 자지 왜 일어났어?'라고 하시던 분이, 명절 음식에 한 톨의 미련도 보이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내가 했으니 너도 해라'는 없으신 분이기에, 이제 아들들이 설거지를 해도 관심 두지 않으신다. 본인이 못 하는 거에 관여치 않으시는 것 같다.


어머니가 본인의 철학을 내게 말로써 설명하신 적은 한 번도 없다. 이건 그냥 다 나의 해석이다. 15년 함께 한 어머니를 해석하는 것은 나의 몫인데, 15년쯤 지나 보니 이리저리 많은 것들이 맥락을 갖고 꿰어진다. 결혼 직후에,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때마다 그때의 어머니가 계셨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니 때마다의 어머니가 한 사람이라는 것이 비로소 받아들여진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이렇게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역시, 시간만 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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