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회사원이었다. 대기업도 아니지만 중소기업도 아닌 적당한 회사에서, 적당한 일을 하며 때가 되면 승진도 하고 출산을 한 번 하고 십여 년을 다녔다. 언어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했지만 어느 언어 하나 유창하지 못했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 다닐 때 교직 이수를 하긴 했는데 국어는 아니었다. 교생실습은 고등학교로 나갔었는데, 나는 우리 반 남자 학생들이 좀 무서웠다. 일단 덩치가 너무 컸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내가 제압당했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수업 중 복도 쪽으로 난 창문으로 넘어 들어오는 아이를 보고 기절할 뻔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자 학생들과는 꽤 재미있게 보냈는데 어쨌든 교생 실습 기간은 딱 한 달이었기 때문에 그 후 학생들과 연락을 몇 번 주고받았었는지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그때 깨달았었다.
나는 성장기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아직 덜 컸구나. 안 되겠다.
한국어 교사가 되려고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논문 읽는 것도 재미있고 원서 읽는 것도 재미있고 심지어 석사 논문 쓰는 것도 힘들지만 재미났다. 동기들과 논문 스터디할 때도 재미있었고 우리는 다들 바쁜 직장인들이고 엄마들인데, 언젠가 1박 2일 놀러도 가고 그랬었다. 대학원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사회 초년생인 사촌 동생이 물었다. "누나, 누나는 공부가 질리지도 않아요? 또 공부를 하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질릴 때까지 일을 하면,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 져.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한국어 시간 강사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때, 정말 나는 하루하루가 신기했다. 회사원으로 일했을 때 받았던 보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급이 낮았지만, 경력도 없는 내 입장에서 그런 걸 계산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 상황과 이유가 충분히 납득되어서 달라진 근무 조건은 그냥 받아들였었다.
지금은 대학교 어학당에 있지만 처음 일한 곳은 어른들을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주재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매우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정말 뭣도 몰랐던 것 같다. 그냥 하하호호 즐겁게 한국어를 가르쳤고-가르친 게 아니라 정보 전달이라고 해야 하나-학생들도 나를 교사라기보다는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한국인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많이 배웠고, 그때 나는 한국어 교사가 계속 내 직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수업이 끝난 후에 뒤돌아서 나오면서 '오늘 수업은 망했다' 부끄러운 날이 있다. 꽤 여러 번 가르친 문법도, 학생의 질문 하나에 새롭게(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선배 교사들이 그러는데,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수업 준비에는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절망적인데요."라고 말한다. 경력이 많이 쌓이면 좀 더 쉬워지고 5분 만에 수업 준비 끝나고 그런 날들을 상상했었는데, 아닌가 보다.
나의 첫 번째 직업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이어졌고, 스무 살 대학생일 때는 졸업 후 내가 무슨 일을 할까 깊게 상상한 적이 없었다. 구체적인 꿈이 없었으니까 그냥 남들처럼 졸업하면 조금이라도 더 크고 더 연봉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야지, 그런 막연한 상상만 했었다. 그런데 한국어 교사는 처음부터 직업을 정해 놓고 대학원에 들어간 경우여서, 준비하는 동안(대학원 입학 전부터) 끊임없이 졸업 후의 나를 상상했었다. 그래서 요즈음에도 '드디어 내가 한국어 교사가 됐구나' 문득 실감하게 되고,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는 내가 무척 신기하다.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며 신기해하다니, 참 주책없긴 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 신기하다.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나도, 중학생 아들을 가진 나도, 결혼한 지 15년이 넘은 나도, 다 신기하다. 스마트폰이면 뭐든지 다 되는 세상만큼이나, 나는 내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