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는 재미있어

평생 모를 타국어의 말맛

by Agnes


#1. 설탕이 아니에요.


여러분~ 뉴스에서 오늘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우산 가지고 왔어요?


수업 끝나기 5분 전,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나는 날씨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어서 날씨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학생들이 너도나도 창밖을 바라보면서, 우산 없는데 어떡하냐 빨리 가자, 하하하 난 우산 가져왔다 어수선하게 난리다. 그때 한 학생이 나에게 말한다.


설탕 아니에요. 괜찮아요, 선생님
네? 무슨 말이에요?
어렸을 때 우산이 없다고 하면 엄마 아빠가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설탕 아니니까 괜찮아.


대충 느낌은 알겠는데 너무 신기해서 구체적으로 다시 말해보라고 하니까, 이런 말이었다. 넌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비를 맞아도 녹지 않아(다행히 영어여서,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와, 이렇게나 재미있는 표현이라니. 만약에 한국어였다면, 한국사람의 언어 습관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안 녹아 안 녹아. (그러니까) 그냥 가!


여기에다가 한 마디 덧붙인다면 '설탕인 줄! 설탕 아니다~' (이건 특정 억양으로 음성 지원이 필요하다) 뭐 이런 말이었을 테고.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생은 계속 "설탕으로 만들지 않았어요"를 반복했지만 나는 단박에 "아! 안 녹는다고?"로 응답했다. 한국 사람의 말투가 담뿍 담긴 문장으로. 이런 것을 보면 번역이나 통역이라는 건 매우 어려운 영역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번역서를 되도록 안 읽고 한국 책만 읽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기억에 남는 문장을 보면 원어로는 어떻게 쓰여 있을까 확인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재미있게 읽은 번역서는 원서를 구입해 보기도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 외국어 실력이 그다지 그래서 원서는 계속 쌓여만 간다. 그리고 변역이 직역이면 직역인 대로, 의역이면 의역인 대로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외국 영화를 보며 자막으로 번역된 한국어를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이런 게 말맛, 어감인가 보다. 그 언어 사용자들만이 알 수 있는 언어의 맛. 그리고 그 언어 사용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 아마 외국인은 평생 알지 못할 모국어 사용자만 느낄 수 있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2. 번외


우리는 신체의 이름이 들어가는 표현을 찾고 있었다. 예를 들면 '손이 크다' '눈이 높다' 이런 표현들. 짐작과는 다른 표현들. 그러면 우리 반 개구쟁이들은 어디서 이런 표현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그걸 나에게 또 열심히 알려준다. 그날은 이런 단어를 찾아냈다(어디 가서 말하긴 좀 그런 표현들).


- 부드러운 머리 = 머리가 나쁜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즉, 바보.

- 머릿속에서 병아리가 삐약삐약거린다 = 상동.


그 나라 말로 이런 표현들은 어떤 맛일까. 한국어로 해석하니까 저렇게 되고 말았지만 그 나라 말로는 진정 어떤 느낌일까. 사실 그걸 떠나서 나의 고민은 이런 거다. 이런 표현들을 찰떡같이 찾아낸 학생들을 칭찬해주어야 할지, 못 들은 척해야 할지, 아하~ 가볍게 받아주고 다음 진도로 후다닥 넘어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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