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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Dec 12. 2021

드라마라는 요물에 대하여

89세 내 시어머니의 이야기

보름 뒤면 90세가 되시는 내 어머니께서는


아침 8시 20분에 아침을 드시고, 점심 12시 30분에 점심을, 저녁 5시 30분쯤 저녁을 드신다.


내 고향 여섯 시가 6시에 시작된다. 끝나고 조금 후 7시 30분에 1차 일일드라마가, 이후 8시 10분에 2차 일일 드라마가 시작된다. 어머니의 하루 일과는 그래서  9시에 모두 끝이 난다.


어머니의 평일을 함께한 적이 있다.

내 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릴없이 드라마를 보는 어머니 곁에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였다.


"애미야, 저 여자가 사람을 죽였어. 쯧쯧쯧."
"그런데. 본 사람이 없으면 괜찮대."
"사람을 죽였대. 글쎄. 뭔 저런 여자가 다 있냐. 쯧쯧쯧."


이 얘기를 몹쓸 짓 한 도둑이나 강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표정을 지으며 세 번쯤 하셨다.

5분에 한 번씩.


드라마를 보며 줄거리를 며느리에게 설명하는 89세 시어머니라니. 이렇게 뭔가에 몰입하신다는 게 참 신기하고, 어머니가 그리고 텔레비전이라는 것이 대견하고 그랬다.


친한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일일드라마 하는 시간에 안부 전화 드리는 게 제일 큰 불효란다. 그 시간은 피해서 전화를 하는 건 기본이라고. 실제로 드라마를 보시다가 자식이 전화를 걸면 대충 대꾸하고 서둘러 끊으시는 게 눈에 보였다.


물론 외로우실 거다. 하루 종일 말 벗도 없고 적적한 날들을 견디고 계실 거라는 자식들의 섣부른 이해.

자식이 가면, 자식이 전화하면 버선발로 받으실 거라는 오만.

아닌가. 나만 몰랐던 이야기인가. 작년에 추석 선물로 좋은 텔레비전을 사 드리려 방문한 가전 매장에는 방에서 보는 용도로 판매되는 42인치는 모두 판매 종료였다. 올해 판매량이 모두 소진되었다고 했던가.


팬데믹으로 취미가 넷플릭스가 된 요즈음,
어머니에게도 텔레비전이라는. 드라마라는. 이 요물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도 어머니는 리모콘을 두 손에 꼭 쥔 채, 어머니가 아는 유일한 문자인 숫자 버튼을 꾹 꾹 눌러가며

9번과 7번과 11번을 넘나들고 계시겠지.


그렇겠지.


89세 내 시어머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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