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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Dec 08. 2021

소명(calling), 한국어 교사

다정이 병인 한국어 교사 이야기


한국어 교사가 된 이후 나는 자주 소명에 대하여 생각한다.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직업으로서의 소명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

많은 외국인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한국에 온다.


어떠한 계기에서건 흥미가 생겨 취미로, 다른 곳으로 건너가기 위한 수단으로, 삶을 위한 절실한 필요로, 등등. 다른 곳으로 건너가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은 대개 나이가 어리다. 나와의 나이 차이보다는 나의 아이와의 나이 차이가 더 적은 스물 언저리의 학생들. 부유하건 가난하건 타지에서의 삶은, 그것도 외국에서의 삶은 팍팍하고, 모든 것에의 가능성은 무한하면서도 유한하다.

엄마 없는 삶. 말이 통하지 않는 삶들에 점점 지쳐 가고, 세 달 남짓한 한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감기에 장염에 알레르기에 교실은 병동이 된다.


나는 천성이 다정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신상의 변화를 잘 기억하고 눈치채는 편이다.


기업에 있을 때도 나의 이러한 천성이 조직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곤 했었다. 사실, 사실은, 여러모로 다정이 병인 편이다(솔직히 말하면 다정함과 오지랍 사이에 중도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물론 내 직업은 언어 교사이지만, 나의 작은 관심과 손짓으로 미소 짓고 눈물 흘리며 위로받는 학생들을 볼 때 '이것이 나의 소명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그리고 자주 든다.


한국어 교사가 된 이후로 어쨌든 나는 교실에 들어가면 행복하다.


젊은 시절(즉 대학 졸업 후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냐고,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모두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부당하고 적당히(아니 좀 많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그만두고 쉽게 딴맘을 먹는 것은 끈기 없고 뚝심 없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어디에서든 자리를 잡으려면, 뭣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들은 일단 꾹 참고 시간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물론, 행복한 직업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런 건 있을 리 없다고.


직업이 행복할리 없다는 나의 섣부름 믿음이, 나를 회사원으로 10년간 일하게 했다. 


물론 지금 하는 일도 교실 밖에서 불편하고 힘들고 난감한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교실에서의 나는 진정 행복하다. 직업과 소명이 일치하는 삶. 더할 수 없이 행복한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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