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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Nov 24. 2022

읽는 인간, 뛰는 인간, 먹는 인간

이제는 쓰는 인간

우리 집에는 세 종의 인간이 산다.

읽는 인간, 뛰는 인간, 먹는 인간.


1. 읽는 인간


읽는 인간은 나다. 요즘은 읽는 인간에서 읽고 쓰는 인간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성인이 된 후 20년 넘게 읽는 인간으로 살았는데, 실컷 읽다 보니 쓰고 싶어져서 읽으면서 쓰는 삶을 지향 중이다.


취업하고 나서, 나에게 월급이 생기고 나서부터, 언니랑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마구 장바구니에 담았다. 매달 "이렇게 사도 마음이 안 무거워." "이렇게 사도 다음 달에 또 살 수 있어." "돈을 버니까 매우 좋구나." "돈을 번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때 제일 재미나게 읽었던 책은 해리포터 시리즈와 박완서 작가님 책, 은희경 작가님 책. 그리고 또 수많은 책들.


고등학교 때 문학 선생님도 그런 말을 했었다. "돈을 벌고 나서 나는 매달 월급의 10%는 책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국어 선생님으로 살면서, 나에게 이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관념이 없었던 나는, 10%로 충분할까, 20-30%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 에이, 쓰는 김에 좀 더 쓰시지. 정말 부럽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시 문학 선생님은 푸릇푸릇한 20대였는데, 나는 사회 초년생이 돼 비로소 선생님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이구나. 선생님은 이런 마음이셨구나.

어쨌든 살아보니, 읽는 인간은 참 살 만하고, 쓰는 인간은 더 살 만하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따뜻한 방에서, 눈이 올 것 같은 창밖을 바라보며 매일 아침 생각한다.

오늘, 책 읽기 딱 좋은 날이다.


2. 뛰는 인간


2주 전, 남편은 강원도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깊은 가을 일요일 새벽에, 뛰고 싶은 마음으로 강원도까지 몇 시간을 고속버스를 타고 달려가, 숨이 꼴딱 넘어가는 위기를 견디고, 땀에 절어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시 몇 시간을 버스를 타고 달려 집에 (절뚝거리며) 도착. 남편은 달리기에 진심이다. 출장을 간 일본 어느 도시에서도, 10년 만에 간 제주도 여행에서도, 남편은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린다. 남편의 여행 가방에는 항상 달리기 가방이 들어 있다. 러닝화와 러닝복. 그리고 여행 전부터 달릴 생각을 하면 기대에 부푼다고 한다.


남편의 서가에는 달리기에 관한 책이 많다(아니 달리기와 남편의 또 다른 취미인 목공에 관한 책이 반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쓱 훑어보니 <달리기의 과학>, <뛰는 사람>, <마라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또.....


새로운 장소를 보면, 아름다운 도시를 보면, 날 좋은 날이면 남편이 항상 하는 말.

여기, 오늘, 달리면 딱 좋겠다.


3. 그리고 먹는 인간


아이는 먹는 걸 참 좋아한다. 음식 욕심도 많고 맛의 미묘한 차이를 섬세하게 알아챈다. 음식이 나오면 무슨 향인지, 이게 어떤 맛인지 감성적으로 묘사하고 얼마나 맛있는지 꼭 표현한다. 그리고 정말 사각사각 맛있게 먹는다. 그 맛에 할머니는 아침부터 소고기를 굽고 계란말이를 하고 국수를 삶고 두부김치를 만든다. 열다섯 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잘, 맛있게 먹는다. 돌도 씹어 먹을 기세로 많이도 먹는다. 가끔 음식을 차려주고 돌아서면, 눈 깜짝할 새 빈 접시가 된다. 방금, 엄마가, 음식을 안 줬나...?


먹는 인간으로서 초등생 시절을 보내고 나서, 아이는 요즘 듣는 인간이 되었다.

가끔 날이 좋으면 학원 귀갓길에 걸어서 온다. 보통은 어둡고 차가 많은 길이라 차로 오고 가는데, 걸어오겠다는 날이 있다. 아이에게 날이 좋다는 건, 걷기에 적당하다는 뜻이다.


"엄마, 비 오는 날 걸으면서 음악을 들으면 참 좋아요."

"엄마, 눈 오는 날 버즈를 끼고 여길 걸으면 정말 좋겠지? 한 번 해 봐."


이 아이가 어떤 인간으로 클지, 참 궁금하다.

너는, 어떤 인간이 될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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