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적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by Agnes

나의 1호 독자가, 내 글을 보면 가끔 뭉클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내 글을 다시 보며 뭉클할 때가 있다고 하니까, 자아도취냐고 말하며 웃었다. 나도 웃으며, 그건 아니고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 글을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글을 써 보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를 몇 번인가 읽었다. 그래서 정말 꾸준히 글을 썼더니 조금 나아졌다고. 나에게 있어 글이란 비슷한 효과를 내고, 당연히 나는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 글을 더 많이 쓴다. 고통은 쓰는 것으로 나이지지 않겠지만 슬픔은 어느 정도 나아지는 것 같다. 쓰는 사람들의 쓰는 이유를 보면 대게 허무함 슬픔 어려움 등이 기저에 있다. 순수한 기쁨으로 글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쁨을 표현할 때도 기쁨의 감사함이 깊숙이 들어있는데 그건 애초에 슬프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슬픔의 반대급부로 기쁨의 감사함을 말하는 것이니, 기쁨을 온전히 즐기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쓰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란 행복한 세상은 아니다.


여기까지, 내가 이야기한 쓰는 마음이란 모두 에세이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희곡이나 다른 형태의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은 조금 다를 것이다. 얼마 전 갔던 북 토크에서 한 독자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제 곧 스무 살이 되는데, 문예 창작과에 합격한 미래의 작가다. 스무 살이 되는 한 달 뒤부터 술 마실 기대에 설레는 중이며, 현재 편견이 없는 스무 살이다. 언젠가 꼭 소설을 쓸 거다. 앗, 저렇게 설레며 기대하는 쓰는 삶이란 내가 상상하며 지향하는 쓰는 삶과는 다르겠구나, 그때 생각했다. 소설을 쓰는 마음이란, 이야기를 만드는 마음이란, 글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마음이란 온전한 기쁨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상상하지는 못했구나.




쓰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많은 직장인들이 제2의 직업으로 작가를 꿈꾼다고 하고, 내가 만난 스무 살 청년처럼 처음부터 본인에게 직업이란 작가밖에 없다고 믿고 달리는 사람들도 많고, 쓰고 싶다 쓰고 싶다 살면서 계속 되뇌다가 결국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찌 되었든 쓰는 사람들의 모든 결말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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