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파트 현관 유리문을 나서니, 생각보다 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항상 일기예보보다는 덜한 날씨를 경험한 지라, 오늘도 조금 일찍 출발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바로 다시 올라가 짐을 간단하게 줄이고, 신발을 갈아 신고, 지하철 역으로 갔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학교 근처 지하철 역에서 내려 10여분을 걸어 학교 정문에 도착. 정문 앞에서 커피를 한 잔 사서 어학당이 있는 건물에 도착. 아침부터 산 넘고 물 건넌 기분으로 강사실이 제일 가까운 건물의 옆문으로 다가서는데, 눈 치우는데 한창인 여사님이 다정하고 급하게 말한다.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덕분에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눈 묻은 신발을 털고, 조심조심 걸어 강사실에 도착했다.
여사님들은 정말, 깜짝 놀라게 친절하다. 아침에 휴지통을 비우기 위해 강사실에 들어설 때도, 이른 아침 컴컴한 건물에 처음 들어설 때도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휴지통 좀 비울게요." "방학이 언제부터지요?" 등등. 어디선가 친절 교육을 받으시나 싶게 밝고 맑은 얼굴로 우리를 대하신다.
우리는 그분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여사'란 학덕이 높고 어진 여자라는 뜻이다. 얼추 느낌이 비슷하다.
눈도 오고 지하철도 막히고 겹겹이 껴 입은 패딩은 실내만 들어서면 덥고 답답하고. 기진맥진한 나를 반겨 준 다정한 말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지난한 출퇴근의 역사. 아침에 출근을 하면 나는, 일하는 사람 모드로 바로 전환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 사회적 인간이 될 시간. 이런 나를 결국 전환시켜 주는 것들이 있다. 어떤 날은 출근 중 받은 카톡이, 우연히 들은 라디오 디제이의 오프닝 멘트가. 어떤 날은 그냥 어떤 물건이나 날씨가. 오늘은 여사님이 그걸 담당해 주셨다.
타자를 변화시키는 것은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다. - 은유 작가님 <올드 걸의 시집>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 옳고 그름의 잣대로 누군가의 삶과 태도를 옳게 계몽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선한 기운을 본인으로부터 옆으로 옆으로 전염시키는 것. 전염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물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