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90세는 흔한 나이지

8.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 윤이재

by Agnes

최근 몇 년 사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이 보인다. 제목에 모두 '할머니'가 들어간다. 저자의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도 있고, 소설도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또는 할머니가 되어 가는 중에 어떤 기분이 들고 어떻게 삶이 달라지는지를 다룬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노년의 여자의 삶을 말하는 글들이다.


놀랍게도 작가는 20대다.

치매 할머니를 어머니와 함께 돌보며 관찰하고 느낀 많은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적었는데, 참 서정적이다. 가까운 사람을 돌보며 느낀 복잡한 감정으로 인한 에피소드도 가끔 등장하는데, 진부하다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이 애틋하다. 20대 취준생 손녀가 할머니를 돌보는 것을 보며 그 옛날 내 언니가 떠올랐고, 치매 노인이 있는 가족들 간에 때때로 생기는-피할 수 없는-불화를 보며 친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의 우리 가족들이 생각났다. 사람이 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는 웹툰으로도 연재되고 있는데, 이야기를 몽글몽글하게 만들어 준 건 표지의 힘이 큰 것 같다. 책도 첫인상이 중요한데, 이 책의 첫인상이 매우 동화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미지에 기대어, 그 연장선으로 따뜻한 마음을 안고 글을 읽었고, 그 연장선에서 본다면 웹툰이 시작된 건 당연한 일이다.


인상 깊었던 많은 이야기 중 하나는, 슈퍼우먼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슈퍼우먼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이웃집 할머니는 종종 슈퍼우먼에게 놀러 오는데, 할머니 둘은 힘들어서 주로 누워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워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주고받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에 의의가 있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에 의의가 있기 때문에 서로의 말을 자를 일도, 상대방의 말로 인해 마음이 상할 일도 없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지만, 할머니 두 분은 진정 상대방과의 대화 자체를 귀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서로를 설득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면 어떤가.

사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얼토당토않게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일주일 뒤면 아흔 하나가 되는 내 시어머니랑 이 두 분이 친구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 그럼 참 좋겠다. 우리 어머니도 친구가 필요한데.


기억나는 또 다른 에피소드는, 저자의 마음에 대한 것이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일이 되어버린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일. 어느 날은 힘이 들어 폭발해 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취준생일 뿐이고, 우리가 알다시피 스무 살 중반의 나이란 아직은 마음이 여리고 약한 때다. 좋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할머니를 돌보는 것에 동참했지만, 작가의 날들이 한편 어떠했을지 보지 않아도 읽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 시절을 산 작가님께, 훌륭하고 멋있다고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갑자기 혼자가 된 사촌 동생이 있었다. 나는 그때 대학생이었는데, 내가 그 집에 들어가 고등학생인 사촌동생을 밥 해 먹이고 살았다. 왜 내가 그런 결정을 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난 그때 매우 버거웠고 힘들었다. 머리로는 최적의 대안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살아보니 나는 아직 어리고 약했다. 고군분투했고, 우리 모두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 가족은 그 시절을 함께 살아 냈다. 가족이니까.


90세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만나면, 나는 반갑다. (이제 곧 91세가 되시는) 내 어머니의 삶을 위한 레퍼런스가 많아지는 느낌이랄까. 무엇이든지 아직도 책에서 배우는 나는, 어머니의 삶도, 어머니의 마음도, 대비하는 방법도, 책에서 찾는다.

그렇게, 그분을 이해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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