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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28. 2023

91세 어머니의 핸드폰 교체기

그래도 갖고 놀게 하나 해 드려라

내 시어머니는 91세. 돌아가신 내 할머니, 외할머니와 비슷한 나이시다.

그리고 내 친정 부모님은 70대 중반이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때, 90 노인에 대한 우리의 돌봄이 마땅한지 의문이 들 때, 친정 부모님께 종종 묻는다.


"엄마, 할머니는 어떠셨어?"
"엄마, 외할아버지는 몇 살 때부터 보청기를 끼 셨어?"
"아빠, 할머니는 언제부터 요양 보호사가 집으로 왔어?"


등등.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답변을 들을 때도 있지만, 돌아가신 조부모님들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으로 이야기가 빠져버려 아주 다른 이야기로 흐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는 종종 묻는다. 그냥 나의 일상을 말하다 보니 말하게 될 때도 있고, 답답한데 물어볼 곳이 없어서 물을 때도 있다. 나의 일상의 많은 부분에 어머니가 있는데, 그것만 쏙 빼고 대화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대화의 마지막은 항상 "너희 시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로 끝난다. 귀는 어둡고 눈은 밝으신 것, 매사에 불평불만 없으시고 씩씩하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신 것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엄마 아빠에게 물었다. "엄마, 외할아버지 아직도 휴대폰 쓰시나?"(내 외할아버지는 올해 96세가 되셨고 아주 정정하시다.) 엄마는 무슨 소리냐며, 휴대폰으로 전화드린 지 됐고 이제는 집전화로만 연락한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보청기도 끼지 않으시고, 혼자서 외출하는 일이 없으시니 휴대폰이 필요하지도 않게 됐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말을 받으며, 우리 어머니도 이번에 휴대폰이 고장 나서 새로 드리려고 하는데, 사실 음감이 좋다며 전화만 쓰신 지 됐고, 혼자서 외출할 일도 없으신데 이걸 해드려야 하나 생각 중이라고, 언제부턴가 휴대폰으로 걸면 받으시고 전화만 받으신다고. 엄마와 나는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보통 나는 이런 대화를 엄마와 주고받고, 아빠는 듣기만 하는 쪽이시다. 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불쑥 이렇게 말했다.


필요 없어도, 갖고 노시게 하나 해 드려라.


아, 나는 순간 생각 짧고 철없는 며느리가 된 기분이었다. 친정 아빠는 70대 중반이신데 카카오페이로 장을 보시고, 손주에게도 언제부턴가 종이돈이 아니라 톡으로 용돈을 주는 분이시다. 조용해 방에 들어가 보면 패드로 장기를 두고 계시고, 일할 때 오는 전화는 워치로 받으신다. 전자기기를 갖고 노는 즐거움은 그 정도만 다를 뿐 누구나 똑같다. 내 아이는 워치의 모든 기능을 활용하며 즐기지만, 내 아빠는 워치의 최소한의 기능만을 이용하면서도 더 많이 즐거우실 거다. 시어머니도 전화를 조작하지 못하시더라도 하다못해 열었다 닫는 즐거움, 충전하는 즐거움이라도 있을 텐데, 내가 그걸 간과했구나. 아빠는 조금 나이 든 노인으로서 많이 나이 든 노인의 마음을 바로 알아챘구나.


그리고 말하면서 나는 또 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집 전화로는 걸려오는 전화는 받을 수 있지만, 걸고 싶은 곳에 걸 수는 없겠구나. 그래서 요즘 어머니의 전화가 뜸했구나,라고. 휴대전화는 단축번호를 익숙한 방식으로 꾹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집전화로는 도저히 발신할 방법이 없으니까. 어머니의 느린 동작과 안 보이는 눈으로 11자리 전화번호를 눌러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니까.


그렇게, 어머니의 휴대폰을 교체했다. 휴대폰 교체 기념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아무런 대화도 하지 못했다. 내 목소리로 나란 걸 알아채신 게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대화가 되질 않는다. 10년 만이다. 함께 시내 휴대전화 대리점에 모시고 가 교체해 드렸던 게 꼭 10년 전인데, 이제 어머니는 외출이 어려우시다. 10년이란 그런 시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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