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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10. 2023

91세 어머니와 대화가 하고 싶다

어머니와 대화가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식사하셨어요? 약 드셨어요? 집 따뜻해요? 이런 말 말고, 대화가 하고 싶다. 그런데 잘 안된다. 이제 존댓말도 잘 안 쓴다. 왜냐하면 발음이 복잡해지고 소리가 길어지면 어머니가 듣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상대방의 입모양과, 손짓을 보고 대화한 지 꽤 됐다. 보청기를 끼시면 좀 낫다. 보청기를 끼셨을 때 잘 들리냐고 물으면, 아주 작게 들린다고 대답하신다. 하지만 아주 작게라도 들리니까 조금 긴 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끼지 않으신다. 귀찮아서도 아니고 충전을 잊으셔서도 아니다. 그냥 끼는 것 자체에 생각이 미치지 못해서다. 누군가 옆에서 아침마다 살뜰히 끼워 주면 좋겠지만, 혼자 사신다. 그리고 매일 만나는 사람은 요양보호사 한 명뿐이다. 주변에서 여럿이 끼라고 성화를 해야 그나마 낄 텐데, 그럴 일이 없다.


어머니를 뵈러 다녀왔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 연락도 없이 불시에 들이닥치면, 어버이날도 아니고 생신도 아니고 명절도 아닌데 왔다고 아주 반가워하신다. 근처에 경조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 가는 길도 아닌데 들렀냐며 아주 좋아하신다. 하지만 밥 먹었냐, 차 막혔냐, 오늘 일 안 하고 쉬었냐, 세 개의 질문을 주고받고 나면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 긴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단 청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아흔이 넘으시면서 어머니는, 여러모로 어머니는, 더욱 늙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숫자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생각해 냈다. "그래" 또는 "응", "아니" 말고 본인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 뭔가 기억해 내서 대답하고 운이 좋으면 옛날 기억을 소환해서 한 마디쯤 더 말을 하게 되는 그런 질문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다.

엄마 올해 몇 살이야?
큰 누나를 몇 살에 낳았어?
둘째 누나는 지금 몇 살이지?

남편은 아직도 어머니에게 반말을 한다. 반말을 하는 것은 아들 딸들 모두의 습관인데, 아마 사투리의 영향인 것 같다. 엄마 밥 먹었어? 또는 엄마 밥 드셨어? 시댁 식구들은 이렇게 반말 또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어디쯤으로 대화를 한다.


엄마 올해 몇 살이냐 물으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구십하나! 내가 올해 구십하나여!

 이렇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큰 누나를 몇 살에 낳았어?" 묻는다. 이런 질문은 좀 힘들다. 어머니가 짐작하지 못하는 질문은 순수하게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런 질문은 평소에 듣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짐작하는 질문들이란 보통 어디가 아프냐, 아프지 않냐, 약을 드셨냐, 맛있냐,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네 번 다섯 번 질문을 반복한 후 비로소 이해하신 어머니는 본인이 큰 딸을 몇 살에 낳았는지 말씀하시고, 더 나아가 큰 딸이 올해 몇 살인지, 언제 환갑이 지났는지, 남편이랑 몇 살 차인지 등을 덧붙여 말씀하신다.


사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고기는 뭔지, 요즘은 무슨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시는지, (나는 사진으로만 뵌)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는지,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어머니와 나누고 싶다. 그럼 어머니에게서 어떤 말들이 줄줄이 딸려 나올지 궁금하고, 알고 싶다. 왜 더 빨리 그런 질문을 하고 살지 못했을까 후회되지는 않는다. 그때는 그럴 우리가 아니었다. 지금에서야가 아니라, 지금 이제는 이런 우리가 된 것이 나는 좋다. 나와 어머니는 점점 더 이런 우리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좋은 건, 대화가 단순해져 오해가 없다. 언제부턴가 어머니에게 서운한 게 하나도 없다. 모든 게 애틋하다. 오해가 생길 만큼의 대화를 하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가르치는 외국학생들도, 초급 학생들과의 오해가 중급학생들과의 오해보다 훨씬 적다.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아니까 무리해서 서로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최소의 수준으로-진심으로-소통한다.


많이 말하고 많이 전하고 싶은 마음이 어머니에게는 무리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어머니는 점점 아이가 돼 가는데, 십 초마다 같은 질문을 열 번쯤 하시는데, 복잡하고 오래된 질문으로 어머니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픈 마음은, 슬프지만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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