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Jun 11. 2023

새것이지만 설레지 않는 경험들

나는 수학여행을 갔고 대학을 갔고 연애를 했고 회사에 입사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첫 해외여행을 갔고 첫 집을 샀고 첫 자동차를 샀고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모든 것이 처음인 나날들이었다.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이벤트들이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질지 기대됐고 흥분됐다. 그렇게 하나하나 경험해 나갔다. 모든 첫 것들은, 모든 새것들은 기대감을 갖는다. 첫사랑, 첫눈, 신입생, 새 학년, 신혼여행, 첫아이, 첫 집. 다, 좋은 것들 뿐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인데 좋지 않은 경험도 하게 됐다. 이를테면, 사고, 수술, 사직, 가까운 사람의 죽음, 구급차, 입원, 이런 것들.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처음이지만 설레지 않는 것들.


얼마 전 어머니의 입원이 길어져, 처음으로 간병 서비스를 받아봤다. 간병료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구하는지, 어떤 분을 어떻게 배정받는지, 등등을 겪으며 모든 게 낯설었다. 처음 접한 간병인은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고 참 살가운 분이었다. 때마다 어머니의 상태를 보내주고 때마다 어머니의 쾌차를 기도하는 메시지를 보내줬다. 이로써 나는 처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어머니의 간병을 맡겨 봤다. 내가 만난 첫 간병인이었다. 


두 번째 간병인을 만났다. 처음이 아니므로 나는 벌써 익숙해져 있었다. 24시간이 되지 않아도 입원 날과 퇴원 날은 하루로 치는 간병료 계산에 의구심을 갖지 않았고, 환자식에 공깃밥을 하나 추가하겠다는 간병인의 조심스러운 부탁을 허락하며 민망해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미래에 대해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한다. 시부모를 먼저 보낸 시누이가, 남편을 먼저 보낸 또 다른 시누이가, 그들의 경험을 말해준다. 모든 것이 처음인 나와 내 남편의 두려움을, 당혹스러움을, 다 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대략 알려준다. 그리고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내 어머니는 본인들에게도 어머니이므로 그분들도 많이 슬플 거다. 하지만 먼저 경험해 본 사람들로서 손 아래 동생들이 마음 아픈 것 또한 마음이 아파서. 그래서 그러신다. 그게 조카들이나 사촌동생들에 대해 내가 갖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나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임신했을 때,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 임신해서 겪는 모든 마음과 몸의 변화는 본인에게는 힘들어도 다 지나가는 예견된 변화라 생각하면 된다고. 임신출산백과에 보면 앞으로 다가올 모든 변화가 정확하게 쓰여 있고, 그대로 겪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 끝은 어마어마한 기쁨이라고. 슬프지 않은 병원 출입이니, 기쁘게 지내라고.

지나고 보니 병원 출입이 우울하지 않았던 경우는 정말 그때 딱 한 번이었다.


다가올 날들이, 다가올 이벤트들이, 새것인데 설레지 않는다. 처음인데 기대되지 않는다.

영영, 하지 않았으면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에게 달력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