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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Nov 29. 2023

장류진 작가님의 책 <연수>를 읽다가

처음 장류진 작가님의 책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을 때. 그 쾌감과 환희가 잊히지 않는다.


그때 나는 직장인으로서 한참 힘들게 살고 있었는데, 꽤 디테일하고 꽤 코믹한, 직장인의 일상을 보면서 유쾌한 연대감을 느꼈다. 소설집에 나오는 단편들에는 IT 쪽 일을 하는 주인공도 나오고, 카드사에 다니는 주인공도 나온다. 나는 읽으면서 이거 OO 이야기 같은데? 상상하면서 추측하면서 스릴도 느꼈다.

그리고, 나도 내 직장인 연가(戀歌)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이런 이야기라면 현직에 있어야 잘 쓸 수 있을 텐데, 나에게는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그 나이와 그 입장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퇴사 직후여서, '나는 이제 그런 시절의 이야기는 쓸 수 없겠지.' 생각하면서 나의 퇴사를 모처럼 서운해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읽은 작가님의 책은 <달까지 가자>였다. 이더리움이라는 일종의 비트코인에 빠진 직장인들 이야기였는데, 주인공 군단의 누구는 이더리움으로 투자에 성공해 꼬마 건물을 사고, 또 다른 주인공 누구는 건물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넉넉한 통장을 갖게 돼 여유로운 직장인이 된다. 그런데 어쨌든 여유로워진 직장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내일, 출근은 하자'라고 마음먹으며 소설이 끝난다. 지난한 직장인의 삶에 한줄기 햇살 같은 투자의 세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출근하는 직장인의 마음. 장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감 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읽은 책이 소설집 <연수>다. '연수'라는 제목을 보고 나는 사람 이름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회사에서 종종 가는 신입 사원 연수, 해외 연수, 할 때 그 '연수'였다. 수록된 단편이 모두 좋았는데, 나는 특히 소설집의 제목으로 발탁된 <연수>가 최고로 좋았다. 종종 누구를 위한 연수인지 집단 모두가 딜레마에 빠지는, 연수 혹은 웍숍. 회사에 다닐 때, 때마다 철마다 각종 웍숍과 연수를 다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수는, 신임 과장 때 간 그룹사 연수였다. 책에 나온 <연수>는 일종의 합숙 면접 같은 연수였다. 연수 결과에 따라 취직 여부가 결정되는, 오징어 게임 같은 연수.


장류진 작가님의 초기 작품들을 읽으며 주니어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면, 이번 작품 <연수>를 읽으면서는 주니어를 벗어나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실제로 과장 승진했을 때, 나는 내가 직장인으로서는 중년에 접어들었다고 느꼈더랬다.


직장인으로서 사는 삶은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종종 즐거웠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또래 동료들과 했던 맥주 한잔, 또래 동료들과 나눴던 한담, 같은 팀으로서 느꼈던 연대감, 그런 것들. 쓰고 보니 일에서 무언갈 성취했던 기억들이 아니라 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직장인 시절의 월급이 물론 그립지만, 시간이 백배는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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