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올해 들어 세 번째 폐에 물이 찼고 네 번째 구급차를 타셨고 여섯 번째 응급실을 찾으셨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가족의 마지막을 함께 지내 낸다는 것은 진정 짐작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경험한 것에 한하여 공감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다.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며 깨닫는, 내 사람의 마지막 나날들.
가족이 참 많다.
나이 서른이 되며 나는 시누이가 다섯 생겼고 아주버님이 하나 생겼다. 그들은 모두 평균 4인의 가족을 꾸렸는데, 큰 조카들은 이미 결혼해서 또다시 4인 가족을 꾸렸다. 어마어마한 대가족이 아닐 수 없다. 가족들은 모두 성정이 유순하고 모여 노는 걸 좋아하는데, 1년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만나는 나를(올케이자 숙모이자 재수씨이자 처남댁이자 동서인, 그리고 할머니인 나를) 살갑게 환대한다. 항상 그랬다.
어마어마한 인원이 모인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미 지친 나는, 모임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기가 질려서 병이 나곤 했다. 지금은 그래도 아이도 크고 내 나이도 꽤 많아졌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지만, 30대 청춘의 나는 그런 만남들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냥 그것 또한 내가 깨야 할 퀘스트 중 하나였다. 집에 쌀 떨어진 지도 모르고 사는 와중에 이런저런 시댁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또 하나의 업무 같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들의 환대는 나의 못난 마음이 부끄러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는 차고 넘쳤고, 헤어질 때는 심지어 다음 만남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시누와 아주버님과 나의 많은 그들이 늙고 나도 나이 들면서, 나에게는 슬플 일들도 두 배 또는 몇 배 많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코로나가 와도 어머니가 요양 병원에 들어가셔도 시간은 차곡차곡 가고, 언젠가 나의 그들도 늙을 테고 우리는 순서 없이 마지막을 맞이할 테고.
환대해 주는 사람이 남들 보다 곱절이나 많은 나는, 버거운 이별을 곱절이나 많이 하게 되겠구나.
망연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