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은 모두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요즘은 남자 간호사들도 많은데, 남자 간호사들은 더더욱 젊은 분들이 많다. 내 눈에 젊은 간호사들은 모두 사회 초년생들로만 보인다. 내가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어서 그런가 보다. 그들은 모두 친절하고 능숙하다. 지방 소도시에서 올라온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들을 많이 상대해서 그런지, 나이 드신 분들의 사투리와 화법에도 익숙해 보인다.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매우 믿음직하다.
이번 입원 생활이 시작됐을 때, 나는 어머니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아니, 이 병원 간호사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 이뻐 그래? 남자고 여자고 다 이쁘네. 고마워유~
어머니는 본래 수줍음이 많은 분이시다. 항상 모두에게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기는 하지만, 목소리와 말의 길이가 매우 달라졌다. 마치 사람 상대하는데 능숙한 서울 할머니 느낌이랄까.
어머니가 계신 곳은 심장 내과 집중 모니터링실이었는데, 병동 담당 간호사가 있음에도 모두 개인 간병인이 필수였다. 어머니 침대 맞은편에는 심장 수술을 한 내 또래의 여자 환자가 있었고, 간병하는 분은 친정어머니라고 했다. 70대 후반으로 보이셨는데, 딱 봐도 병실에 있는 다섯 명의 보호자 중 우리 어머니와 가장 말이 잘 통할 것 같았다. 4명의 보호자는 자식들이니 어머니와 연배가 맞지 않고, 한 분 계신 할아버지 보호자는 어머니 연배지만 남자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곧 그 할머니와 말을 트셨다.
아줌마! 아줌마 일로 와. 친정엄마야? 와서 얘기 좀 하다가. 나랑 좀 놀다 가.
나는 이때 확신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서너 달 계시더니, 사회성이 많이 느셨구나.
어머니는 어머니 나이 60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고향을 떠나 시내로 이사하셨다. 고향이 개발돼 마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시내 또는 다른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고 어머니는 이웃이 없어졌다. 고향 마을과 가까운 시내로 이사를 하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그 후에도 계속 일을 다니셨기 때문에 새로운 이웃이 생기지 않았다. 시내 빌라촌은 혼자 사는 할머니가 이웃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였을 거다.
내가 본 어머니는 한 번도 누군가와의 수다를 즐기지 않으셨다. 그건 어머니께서 그런 성정인 것이 이유의 팔 할이었을 테고 나머지 이 할의 이유는 말을 나누는 즐거움을 즐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거다. 본래도 그런 이유를 짐작했는데, 요양병원 생활 3개월 후 달라진 어머니를 보고서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입원 생활이 끝난 후 계시던 요양병원으로 돌아갔을 때, 요양병원에 있는 의료진과 같은 병실 어르신들을 보고 서로 간에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더욱 확신이 들었다.
어머니는 나이 90에 사회생활의 맛을 찾으셨구나. 불행 중 다행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퇴원을 하셨다. 그리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문득문득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의 달라진 모습이 생각났다. 나이 90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의 매력의 팔 할은 순진무구와 순박함이셨는데, 사회성이 좋아지신 어머니가 좋긴 하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몇 번 하다가, 결국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누가 우리 어머니에게 눈치 주나?
모든 사회생활은 부작용이 있다. 우리가 모두 아는 그 부작용.
입원 생활이 시작됐을 때부터 앞 침대 할머니는 우리 두 고부를 눈여겨보셨다.뭔가 말을 붙이고 싶어 계속 틈을 보시더니, 반나절 후 바로 질문이 쏟아졌다.
"딸이유, 며느리유?" "여기 사람이야, 서울 사람이야?" "어제부터 같이 있던 남자는 큰 아들이었어?" "이렇게 번갈아 올 자식들이 많이 있으니, 할머니 진짜 복 받으셨수" 등등. 어머니는 원래 나에게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예쁘다' 등등의 말을 많이 하시고, 손도 자주 만지시고 뽀뽀도 해 주신다. 하지만 가끔 짜증이 나실 때는 내 손을 강하게 뿌리치신다거나, '안 먹어' 내지는 '싫어' '필요 없어' 등의 말과 함께 크게 소리를 치시며 내치신다. 이번에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앞 침대 할머니의 눈치를 보셨다.
그 생각이 나면서,90 어머니께서 이제 사회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시작하셨구나, 생각했다.
입원 생활을 시작할 때는 여러모로 어머니께 눈을 뗄 수 없었지만, 3일쯤 지나니 상태가 안정되셨다. 어머니의 상태가 안정되고 나니, 낮에도 달게 잠을 주무셨다. 그때 나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어머니 옆에서 가져간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아, 이 느낌 뭔가 익숙한데.' 내 아이가 감기 같은 가벼운 병으로 아플 때, (시간이 지나면 나을 테니)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옆에서 책을 읽었었다.
그 마음이었다. 어머니의 보호자로서의 마음. 내아이의 보호자로서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