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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Feb 08. 2024

설날, 우리가 가는 곳은 요양병원

지난 추석은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후 맞는 첫 명절이었다.


우리는 요양병원에 어머니의 짧은 외박을 신청했다. 요양병원에 잘 적응하셨지만 어머니는 종종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명절에 요양병원에 계시게 하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고, 가족들이랑 식사도 함께 하고 싶고, 겸사겸사. 물론 많은 걱정을 했다. 겨우 이틀이지만 괜찮으실까. 약이야 받아서 집에서 먹어도 되지만 주사 같은 경우는 이틀을 건너뛰어도 상관없을까. 오랜만의 외출이고 게다가 명절이었다. 우리는 많은 계획을 세웠다 취소했다 다시 세우고, 많은 근심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외출하지 못하셨다. 외박 예정 당일에 어머니의 상태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산소 콧줄도 꼽으시고 여러 가지 치료도 받으셔야 하므로 외박은커녕 보호자 면회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 순식간에 없었던 일이 됐다. 여러 말과 생각들이 무색하게, 모든 게 부질없어졌다.


 참,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여기저기 통화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코로나가 오면서 제사와 차례가 순서대로 없어졌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부쩍 나이가 드셨고 결국 요양병원에 가시게 됐다. 그다음으로 어머니의 집이 없어졌다. 어머니는 본인의 결정하에 본인의 세간살이를 모두 정리하시고 집을 정리하셨다. 집 정리도 전문업체를 통해 했기 때문에, 나는 날짜와 주소와 어머니의 이름이 적힌 사진으로만, 어머니의 낡은 집을 마지막으로 봤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렇게 제사와, 차례와, 어머니의 집이, 없어졌다. 나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향을 잃은 기분이다. 명절이 오고 있음에도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인 걸 지금 알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그걸 깨달았다.


이번 설날에, 그러니까 이틀 뒤에, 우리는 어머니를 뵈러 요양병원으로 간다. 설날인데 어떤 음식을 준비해 가야 하나. 지난번에 보니 요양병원의 로비를 리뉴얼하고 있던데, 거기서 간단한 다과 정도는 하게 해주지 않을까, 어머니는 명절 음식 중 잡채를 최고로 좋아하시는데 그걸 어떻게 준비해 가 볼 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계속 내 브런치 접속 검색어가 눈에 들어왔다. '요양병원 선물' '요양병원 외출' '요양병원 명절' 등등.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신 나 같은 자식들은 모두 같은 걱정과 생각을 하면서 사나 보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무것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이틀 전, 담당 주치의가 모든 외부 음식 반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물 제외 모든 음식 금지". 어머니의 당뇨 수치와 신장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주치의는 '신장 투석' 등의 무서운 말을 하면서, 물만 가져오라고 했다. 어머니의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외출할 때 우리가 사 가는 아이스크림과 요플레인데. 큰일 났다. 낭패다. 돈도 못 드리고 아이스크림도 못 사가면, 우린 무얼 가져가야 하나.


가져갈 음식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사실 나는 큰 일 하나를 덜은 셈이다.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할 일은 수만가지다. 맛있는 반찬 가게를 찾고, 주문하고, 받아오고, 상하지 않게 보관했다가, 아침 일찍 아이스팩에 담아 가서, 또 따뜻하게 드시게 하려면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하고. 그런 일들이 한 방에 없어졌으니 홀가분하면서도,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곧 심란해진다. 이게 뭔가, 명절에 맨손이라니.


몸은 편해지고 마음은 무거워지는. 그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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