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기로 죽을 오래 먹으면 소화 기관이 유동식을 소화하는 것에 적응해 버려 점점 소화 기능이 약해진다고 들었는데, 괜찮을까? 아니면 죽을 먹을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아니, 한 달이나 죽을 드시는데 보호자인 내가 모른다고? 혹시 지난번에 발치한 이 때문에 잇몸이 아물지 못하고 뭔가 문제가 발생한 걸까? 단 하나 남아있던 이를 뽑아 버렸으니, 이제 어머니는 이가 없으신데... 틀니가 안 맞는 걸까?한 달이 넘게 죽을 드시고 계시다는 말에 깜짝 놀라 어리둥절 난색을 표하는 나에게,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이런저런 말들을 아이에게 설명하듯 차근차근 해 주셨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요양병원 초보 보호자인 것을 아시는 눈치다. 내 질문의 질이,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너무 기초적이고 때로는 너무 상세해서다.
어르신들이 죽을 찾으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씹기 편하기도 하고 소화가 잘 되기도 하니까 굳이 어딘가 문제가 있지 않아도 더러 찾으신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 본인이 먹기 질리시면 밥으로 달라고 말씀하시고 또 마땅치 않으면 죽으로 달라고도 말씀하시고, 밥 대신에 죽을 먹지만 된 밥 수준이고, 반찬과 국도 다 말끔히 드신다고도 덧붙였다. 매 끼니 어떠한 음식을 드리고 얼마큼 드시는지 기록하기 때문에, 자세히 물으면 그걸 보고 설명해 주시기도 한다. 어쨌든 마지막 결론은 이렇게 끝난다.
어르신은 의사 표현이 되시니까요.
내가 뭔갈 자세히 묻고 걱정하고 우려를 표하면, 항상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정리하신다. '잘 살펴보고 전화드릴게요. 여쭤 볼게요' 또는 '면회 오시면 한 번 여쭤 보세요' 어쨌든 끝은 이거다. '어르신은 의사 표현이 잘 되시니까요.' 왜 마무리가 항상 이 말로 끝이 날까 생경했는데, 얼마 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10개월 남짓. 그동안 코로나와 감기 등 감염병이 더하고 덜함에 따라, 우리는 대부분 로비에서 어머니를 뵈었다. 이제는 코로나 진단 키트를 팔지 않는 편의점도 많이 있는데, 요양병원은 아직도 코로나 키트 검사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처음으로, 어머니가 지내시는 3인 병실을 둘러보게 됐다. 함께 간 아이는 병실을 들여다보며 "할머니 룸메이트가 있구나?" 장난스레 운을 뗐고, 나도 어머니가 함께 지내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시려나. 멀리서부터 바라보며 들어갔다. 속으로 '큰 소리로 인사해야지.' '음료수라도 사 왔어야 하는데, 어머니 간식 반입이 금지돼 버려서 하필 빈손으로 온 날 병실에 들어왔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멀리서부터 큰 소리로 인사하려던 내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알아버렸다. 옆 침대 어르신은 바르게 누워계셨고, 눈을 뜨고 계셨지만 소리에 반응하지 않으셨고, 사람들을 좇아 눈을 움직이지 않으셨다. '아, 이거구나.'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항상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구나. '어머니는 의사 표현이 되시니까요.' 그들에게 있어 의사표현 가능 여부는, 환자들을 돌봄에 있어 매우 큰 기준이 되겠구나.
내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 보낼 때가 생각이 난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를, 두 돌이 채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괜찮을까, 많이 생각했다. 나는 아이가 6살이 될 때까지 그 평범한 일상-어린이집 등원과 하원-도 함께하지 못하는 매우 바쁜 워킹맘이었는데, 어쩌다 한 번 하원을 시키러 가면 '말도 못 하는' 내 아이가 어디선가 놀다가 뛰어나왔다. 아이에게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을 수 없는 것이 답답했고, 간단한 대답은 하지만 외계어가 태반인 이 아이가, 하루를 어찌 보내는지 애면글면 근심과 초조의 날들이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과, 의사표현이 되지 않는 노부모를 요양 병원에 모시는 것. 뭔가 닮아 있다. 어떻게 이렇게, 시작과 끝이 비슷한지. 다만, 어린이집에 보낸 내 아이는 하루하루 빠르게 커서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니까, 내년엔 나아지고 내후년엔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점점 더 나빠져 갈 거라는 슬픈 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