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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11. 2024

나의 첫책, 에필로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 나이 여든여덟이셨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생의 전환기를 맞고 계셨다. 골절 수술을 연달아하셨고 1년 가까이 둘째 집에 머무르고 계셨다. 퇴근길 남편과 함께, 어두운 자유로를 달린 기억이 난다. 다음 날 예정되어 있는 골절 수술을 위해,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러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친한 언니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기억도 난다.

"언니,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

"아이구, 어떡하니. 기도할게."

"어뜩하지. 많이, 많이, 안 좋으셔."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땐 정말, 곧 어머니를 잃는 줄 알았다.


결혼 직후, 지인의 소개로 재무설계사를 만난 기억이 난다. 갓 서른이 된 우리 부부에게 설계사는 이른바 <인생 포트폴리오>를 내밀며 많은 상품들을 설계해 왔었다. 몇 년 후에는 자녀 1, 또 몇 년 후에는 자녀 2, 또 몇 년 후에는 주택 마련, 이런 식이었고, 거기에는 생애 전환점마다 필요한 각종 돈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 그러므로 적금은 이걸, 펀드는 이걸, 보험은 이걸, 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대게 생애 전환기를 말할 때 내 결혼, 출산, 은퇴, 자녀의 결혼,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어머니와 지내다 보니, 노년기에는 노년기만의 생의 전환점이 있었다. 나는 그 나이를 이렇게 기억한다. 여든다섯, 여든여덟, 아흔둘. 처음으로 장기간 입원한 해, 처음으로 장시간 수술을 한 해, 처음으로 자식 손에 목욕을 맞긴 해, 처음으로 누워서 식사를 한 해, 이런 식으로. 노년기에 맞는 생의 전환점은, 서글프고 애처로웠다.


동료 선생님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선생님은 해외에 계실 때 부모님께서 너무 많이 편찮으셔서, 많이 힘드셨다고 했다. 귀국을 결정해야 하나, 그런 고민의 반복이었던 시간들. 정말 너무 많이 힘드셨겠다고 공감의 말을 건네니,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연습을 시켜 주시더라고요." 연습이라 함은, 부모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을 몇 번이나 겪고 나니, 그런 두려움도 연습이 되더라는 거다. 연습. 나 또한 몇 차례의 연습을 겪었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했다. 물론 그게 연습한다고 될 리 없겠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나서, 책으로 발간하고 나서, 나는 요즘, 묘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 이건, 이야기로부터의 해방이다. 내 안에 쌓여 있던 어머니 이야기로부터의 해방감. 얼마 전 발간된 은유 작가님의 신작 제목이 <해방의 밤>인데, 그 책 제목 또한 이제야 이해한다. 어디서 들은 건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하고픈 말이 흘러넘쳐야 글이 된다고 했다. 나에게 흘러넘치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이, 갈 곳을 잃지 않고 내 첫 책으로 엮여서 나와 정말 다행이다. 내 안에 마냥 갇혀 있지 않고 이렇게 예쁜 책으로 나와, 진짜 다행이다.


어머니의 이야기, 나와 어머니의 이야기와 비슷한 글들을 더러 본다. 어쩜, 이건 내가 쓴 이야기와 이렇게 비슷한 걸까. 그리고 독자분들께서 써 주시는 서평에도, 나에게 들려주시는 독서 후기에도, 말로 전해 주시는 한 마디 한 마디에도, 내 이야기와 비슷한 구석이 정말 많다. 어느 분의 말처럼, 내가 쓴 건 우리의 이야기이고, 난 그걸 썼을 뿐이다. 다른 모든 분들은 쓰지 않았지만, 난 썼을 뿐이다.


신인 작가이면서 너무도 용기백배하게 북토크를 두 차례나 계획했다. 가서, 이런 내 에필로그를 들려 드리고, 내 책을 읽으신 분들과 이 해방감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다. 감사하게도, 내 이야기를 읽어 주신 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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