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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27. 2024

어디까지 늙으시려나

요양병원에 방문한 가족에게서 어머니의 사진을 받았다. 컨디션 좋고 잘 주무시고 잘 잡순다고 근황도 알려왔다. '역시 우리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받은 사진을 확대해 본다. 편안한 얼굴이지만, 어머니는 그새 더 늙으셨다.


어제 넷째 시누이의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조문을 다녀왔다. 돌아가신 분께서는 내 어머니보다 한 살이 많으시다.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항상 우리 어머니보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어왔다. 비슷한 연배지만 항상 우리 어머니보다 근력도 부족하시고 모든 노화가 빨랐다. 예를 들면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젓가락을 사용하시는데,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손가락 힘과 조작력이 일찍 쇠하셔서 포크를 사용하게 되신 지 오래다.


결혼 직후 시누이 중 한 분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밤늦은 시간 조문을 간 적이 있다. 가족들은 '민선이도 왔냐'시며 밤늦은 시간 걸음해 주어 고맙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를 않는데, 아마 아이를 낳기 전이었으니 가능했던 것 같다. 이후 나는 아이를 낳았고, 밤늦은 시간 멀리 가야 하는 조문들은 가지 못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누군가가 돌아가시는 일도 별로 없었고 먼 관계의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당연히 남편만 갔다. 남편도 출장 중이거나 일정이 여의치 않다면 가족들은 "너희까지 안 와도 돼"라고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다.


항상 "너희까지 안 와도 돼"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까지'. 너희까지 고생하지 않아도 돼, 너희까지 걸음 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우리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어른들로부터 어른의 책무를 유예받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컸기에 나는 나보다 조금 어린 조카들에게, 사촌 동생들에게,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희는 안 가도 돼.", "너희는 먼저 올라 가." 그렇게 살다가, 이제는 "너희도 올 거지?"의 나이가 되었다. 더는 유예할 수 없이, 결국 나도 완벽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조문을 가면서 생각해 보니, 남편의 다섯 누나 중 시부모님이 살아 계신 분들이 이제 없다. 다섯 분 모두, 부모라면 이제 친정어머니이신 우리 어머니 하나 남았다. 세월이 이렇게 가 버렸다.


다음 북토크 준비를 위해 책에 실린 어머니 사진들을 훑어봤다. 책에 실린 어머니의 뒷모습, 어머니를 그린 그림 등의 원본을 찾아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내 휴대폰 속 <어머니> 폴더를 훑어보는데, 보면서 느낀 것은 어머니가 조금씩 조금씩 끊임없이 늙으셨다는 거다. 옛날에 옛날에 형님이랑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들 크는 거 보면 진짜 콩나물 자라듯 쑥쑥 크는데, 그것에 비하면 할머니들은 그렇게 티 나게 늙지 않는 것 같다고. 우리 어머니도 항상 그 모습 그대로라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우리 어머니는 70대 후반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조금씩 조금씩 어머니는 계속 늙어 가셨다. 눈이 더 작아지셨고 주름이 더 늘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늙을 수 있을까 싶게, 계속 계속, 늙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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