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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24. 2024

치매라는 슬픈 단어

18.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하재영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의 조합인 '치매'는 인지 장애에 대한 비하적 용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질환, 장애, 노년 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조심스러우나, 대체할 만한 적절한 용어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 앞으로 이 용어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며 이 책에서는 치매라는 말을 사용했다. (196쪽)

하재영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2023, 휴머니스트


이 책은 노년에 대한 책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책이다. "개인의 미시적 서사가 사회에 대한 증언으로 확장하는 이야기, 공적 주제가 한 사람의 내밀한 삶으로 수렴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불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타자와 연결되는 글쓰기를 소망하는(같은 책, 작가 소개)" 하재영 작가의 책. 먼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으면서 어떻게 작가 개인의 서사가 사회에 대한 증언으로 확장하는지를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나는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 작가의 작품 세계는 이거구나. 너무, 좋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이런 시선으로 본다면, 내 개인의 삶은 모두 하나하나 선후가 있고 역사가 되고 증언이 되는구나. 나 개인의 삶도 거시적으로 보면 의미가 있다고? 다행이다.


전작에서 작가가 '집'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통해 개인의 인생 서사를 거시적 관점으로 이야기했다면, 이 책에서 작가는 '어머니'의 정체를 톺아본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할머니의 노년을 말하다가 '치매'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작가가 쓴 '치매'의 각주를 읽으면서 나는 정말 놀랐다. '놀랐다'는 단어보다 더 '놀랍다'는 감정을 더 정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는 것 같다.


치매(癡呆). 어리석고 어리석음이라니. 이 단어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만들어진 걸까, 대체. 나는 여러 책을 통해 치매라는 단어를 많이 보고 읽었고, 인지증이라는 단어도 여러 번 접했다. 하지만 인지증과 치매가 동의어인지, 치매가 한자어인지 한국어인지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내가 여태껏 내 가족 중 인지증 환자를 가까이서 보지 못해서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천착하는 내 습관이 무색하게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넓고 넓다.


부모님의 병환을 목도하며 노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년이 가까워진 사람, 노년이 된 사람, 노년의 가족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언젠가는 노년이 될 모두가 생각해야 한다고. (249쪽)


어제 북토크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그런 말을 했다. 본인의 어머니께서는 지금 '돌아가시고 계시다'라고. 숙환 또는 노환이라 설명하는 그 상태는, 아마 서서히 꺼져가고 있고 그래서 지인 분께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았다. 우리는 가족 안에 누군가 노인이 있어야만 노년의 존재를 알게 된다. 마냥 외면하다가, 어쩔 수 없을 상태가 되어야 직시한다. 슬픈 얘기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좀 더 건강하고 좀 더 시간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못 한다.


어느 경제 프로그램에서 들었는데, 40대 중후반 사람들의 문제점은 본인들의 소득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는 점이라고 한다. 대개 40대 중반이면 소득은 피크에 달하는데, 그때의 마음으로 장기 대출을 받고 집을 사고 차를 산다는 거다. 곧 그들의 임금은 서서히 또는 급작스럽게 떨어질 텐데 정말 한 치 앞을 예상치 못하고. 40대 중후반은 질병, 사고, 부모님의 노화 등이 그야말로 '쳐들어오는' 시기다. 그리고 그것들은 종종 큰돈이 필요하다.


나도 그 대열에 들어섰다. 나는 내 노년도 설계해야 하고 부모님의 노년도 바라봐야 한다. 부모님의 노년을 내가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분의 노년을 바라봐야 하니, 그것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바꿀 수 없고 내가 운전할 수 없는 가족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내 노년을 '대비'하는 것 말고 '설계'하고 싶다. 경제적 설계뿐 아니라 다른 것도 설계하고 싶다. 전장에 나가는 마음 말고 기획하는 마음이 되고 싶은데,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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