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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22. 2024

낭만적인 너무도 낭만적인

19. 행복한 철학자 : 우애정

그런 날이 있다. 노년에 대한 몽글몽글하고 낭만적인 글을 읽고 싶은 날. 단, 마냥 몽글한 글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마냥 몽글한 글은 너무나 그냥 남 얘기 같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나는 어딘가에 있을 법 하지만 어디에서도 읽은 적이 없는, 술술 읽혀서 이야기에 빠져 들다가 급기야 주인공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가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읽고 싶다.


그럴 때 나에게 온 책 <행복한 철학자>.

<행복한 철학자>는 유명한 인스타툰(펀자이씨툰)의 주인공인 우애령 소설가님의 책으로, 이번에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우애령 작가님의 원작을 개정하면서 따님이신 엄유진 작가님의 만화와 그림, 남편 분의 편지와 인터뷰 등이 추가되었다. 책 제목에 쓰인 '철학자'는 우애령 작가님의 남편으로, 철학 박사시다.


부캐가 책방 산책자인 나는, 오며 가며 <펀자이씨툰>에 자주 노출됐지만 왠지 책을 들춰 본 기억이 없다. 몇 번이고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열어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내 아지트 #뜻밖의 여행에서 <행복한 철학자>를 들춰봤는데, 그래픽 노블이라기엔 글밥이 많고 에세이라기엔 매력적인 만화가 상당량 혼합되어 있었다. 그렇다. 요즘 그래픽 노블에 푹 빠져 있는 내가 읽기에, 아주 적합했다.


노세, 노세 늙어서 노세, 죽어지면 못 노나니.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철학자는 답사에서 말하기를 결혼이나 회갑, 이런 날들이 원래는 축하할 날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축하하느라고 법석을 떠는 것은 아마도 결혼으로 인해 고생이 시작되는 것이나 육십이 지나 죽음이 가까워 오는 것에 대한 슬픔을 슬쩍 얼버무리기 위한 것 같다고.

우애령 <행복한 철학자> 2024 하늘재 (156쪽)


노세, 노세 늙어서 노세, 죽어지면 못 노나니. 죽으면 못 노니까 지금 어서 빨리 놀자고. 죽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지만 그중에 유독 '노는 것'의 아쉬움을 말하며 어서 빨리 놀자고 한다. 이럴 때 나는 인간이 귀엽다. 생각해 보니 수많은 생일들, 특히 회갑이나 칠순 같은 특별한 생일들은 오랫동안 살아있음을 축하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서글프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말인데 그걸 또 다른 사람들이 축하해 준다니. 다만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이만큼 살아냈으니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뜻에서 자축하는 것은 가능하겠다. 하지만 그 이외의 축하들은 좀, 뜻을 생각하면 할수록 머쓱하다.

 

아리따운 여자와 늦바람이 난다면 사람이 이렇게 되리라 싶다.
철학자는 아버지의 고향에 마련한 시골집과 연애하는 사람 같다. 한동안 그곳에 가지 못하면 답답하고 좀이 쑤셔 못 견딘다.

같은 책 (204쪽)


우애령 작가님이 쓴 '행복한 철학자' 이야기, 작가님의 남편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내 아빠에 대해 생각했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꿈꾸는 낭만가 정도는 되는 우리 아빠는, 오늘도 주말 농장에서 사각사각 일기를 쓴다. 어느 날은 '달이 너무 밝아서'라고 쓰고 또 어느 날은 '외가 집들이 5명'이라고 쓰고 또 어느 날은 '비료 2 봉지'라고 쓰신다. 70대 후반의 나이에, 손주 보는 재미도 사라진 이 마당에 이제 무슨 재미로 사시려나 걱정스러웠던 내 아빠는, 요즘 주말 농장과 늦바람이 났다. 주말 농장과 함께라면 아빠의 노년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아폴로와 뮤즈, 디오니소스 사이를 방황하며 살아온 철학자의 노년은 어떤 형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지 자못 궁금하다. 같은 책 (242쪽)


아빠의 77년 인생을 되돌아볼 때 평탄한 인생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빠의 노력과 수고가 아빠와 우리 가족을 평탄한 삶으로 이끌었을 수는 있지만, 아빠가 평탄한 인생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그걸 잊지 않는다. 아빠의 수고를 운으로 치부하지 않음으로, 나는 아빠의 인생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아빠는 인생 내내 항상 열심히 사셨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계시고 그 와중에 낭만도 잃지 않으셨다. 아빠의 낭만은 나이 드시면 드실수록 더 빛을 내고 있어서, 나는 아빠의 노년이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자식 또는 배우자가 내 노년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진정 '잘' 살았다는 방증일 거다. 그런 노년이라면, 그렇게 나이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부모가 백만장자로 늙는 것 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일 일이다.


인생에 너무 큰 열등감과 두려움을 지고 컸기 때문인지 이렇게 잘 살아온 게 대견해.
연말에 내 삶의 흔적이 되는 훌륭한 사람들과 만나고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
 
같은 책 (256쪽)


예전에 박완서 작가님도 이런 이야기를 쓰신 적이 있다. 그때 작가님은 70대셨는데,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 힘들었던 고단했던 청춘보다 70대인 지금이 훨씬 좋으시다고 하셨었나.


나도 철학자의 저 말이 매우 공감이 간다. 스물세 살 첫 직장에 들어가서 일하던 어느 날, 명동에 있는 큰 백화점에 쇼핑을 갔던 어느 날, 나는 그 많은 물건들의 홍수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화려한 쇼윈도와 갖고 싶은 많은 물건들. 그때 내 연봉으로는, 그리고 앞으로도 내 미래에서, 나는 마음껏 여기서 쇼핑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거다, 그때의 막막함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막막함은 줄곧 마음속에 있었다. 꽤 연봉이 높은 회사에 다닐 때에도, 남편과 결혼해 이제 둘이 버니까 수입이 두 배라며 든든해했을 때도, 얼떨결에 산 집값이 껑충 뛰어 꽤 큰 차익을 내고 팔았을 때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오르지 못할 곳과 가난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비단 돈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등감과 두려움이었을 거다.


이번 주에도 생일이다 결혼기념일이다 정신이 없다. 계속 축하해 주렴.
철학자인 아빠가 너무 행복해서 미안하다.
 허리는 그저 견딜 만하단다. 병과 사귀면서 지내려고 한단다.
같은 책  (268쪽)


타국에서 청춘을 살아 내느라 고군분투 중인 딸에게 '아빠가 너무 행복해서 미안하다'는 철학자. <행복한 철학자>를 읽고 꿈이 생겼다. 바삐, 전투적으로, 신명 나게 사는 나의 아이에게, '엄마가 너무 행복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노년을 살고 싶어졌다. 노년을 준비 또는 대비해야 한다고 많은 중년들이 말한다. 이제 자식은 훨훨 날려 보내야 하고, 자식이 옆에 없어도 혼자 잘 놀아야 한다고. 그러니 혼자 잘 놀 수 있게 지금부터 취미를 만들고 준비해야 한다고. 그게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물론 잘 안다. 나도 안다. 그런데 똑같은 말을 뒤집어 말하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빠가, 너 없이 너무 행복하게 잘 살아서 미안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노년을 고대한다고. 같은 말이지만, 진짜 진짜 있어 보인다. 그렇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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