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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n 03. 2024

어머니께서 자꾸 우신다.

아이처럼

이번 면회 때에도 어김없이, 어머니께서 우셨다. 아이처럼 엉엉. 눈물을 양손으로 쓱쓱 문대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초등학생 아이 같다. 울음 끝이 길지 않은 것도, 영락없는 아이다. 내 조카, 이제 갓 학교에 들어간 사촌 조카 느낌이다. 맑은 눈물이 어머니 눈에 초롱초롱 맺혔다.

왜 자꾸 울어요 어머니, 하면. 보고시펐어, 하시고. 울지 마세요, 하면. 그래 아라써, 하신다. 


지난주에는 날이 좋아서, 그리고 어머니의 상태가 좋아서 용기 있게, 휠체어를 밀고 병원 바깥으로 나와 봤다. 물론 간호사께 허락을 받고, 멀리 나가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받고,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로비를 지나 주차장 근처로 나왔다. 6월, 초여름이 시작됐지만 그늘이라 그런지 시원하게 바람이 솔솔 불었다. 문득, 어머니를 보시고 바람 쐬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어디 하루 모시고 가서 자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어머니랑 옛날처럼 나란히 누워 낮잠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어머니는 기침을 연달아하며 숨이 가쁘다고 하셨고, 우리는 겁에 질려 얼른 어머니를 다시 병실로 모시고 갔다. 병실에 가면, 산소를 코로 마시는 산소줄이 있다. 어머니는 병실로 내려가는 사이에 이미 정상 호흡으로 돌아오셨지만, 우리는 너무나 두렵다. 우리는 병원 내부에 있는데, 바로 지척에 의료진이 있는데, 그런데도 우리는 어머니가 잠깐 숨이 가빠하시는 것도 보지 못하고 허둥지둥 댔다.

우리는 진짜, 두렵다.


지난번 면회 때는 넷째 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시더니, 이번 면회 때는 일주일 전에 용돈을 주고 손주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하셨다. 결국 우리가 이름을 알려드릴 때까지 끝내, 기억해 내지 못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조금 더 우울해지셨고, 조금 더 인지증이 진행되신 것 같다.


요즘, 70대 중반인 친정 부모님의 노화를 실감하는 중이다. 너무 지척에 살고 너무 자주 봐서 몰랐는데, 이제 내 아빠는 70대 중반이라기보다는 후반이라고 말해야 맞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멀리서 아빠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가끔은 너무 젊어 보여서, 대부분은 너무 나이 들어 보여서다. 센스 있는 차림새와 각종 전자기기를 현란하게 사용하시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느껴진다. '아, 아빠도 나이가 드셨구나.' 그럴 때 희한하게도 나는 시어머니가 보고 싶어 진다. 더 나이 드신 어머니가 왜 보고 싶어 지는지 모르겠는데, '시어머니도' 보고 싶어 지는 것인지 '시어머니가' 보고 싶어 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아, 어머니 보고 싶네.' 그런 날은, 내가 내 친정 부모의 노화를 깨달아 쓸쓸해진 어떤 날이다.


오늘 친정 부모님의 병원 검진에 동행하며 많은 아픈 사람들과 많은 아픈 사람의 가족들을 봤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나는 알아버렸다. 나에게 오지 않은 불행은, 당연하게도 내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구나. 나에게 '아직' 오지 않은 것뿐이었구나. 누구든 언제든, 하루아침에 슬픔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것이구나.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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