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어머니께 빈손으로 가는 것이 영 어색한 나는, 뭘 가져갈까 틈틈이 생각했다. 앞가슴에 꽂아드릴 카네이션은 조화로 하나 사 가기로 진즉 결정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앞섶에 꽂는 카네이션은 항상 마다치 않으셨으니까.
간식 반입 금지로 그 흔한 한과 하나 사들고 가지 못한 지 몇 달째다. 하루 세끼 식사를 잘 잡수신다면 뉴케어도 과하다며 반입 금지, 영양제는 진즉에 퇴짜. 주치의의 "내 어머니라면 탄수화물도 통제하겠다."는 말은, 매우 큰 힘이 있었다. 그 결과 어머니는 배가 많이 들어가셨고 그래서 몸이 가벼워 보이는 거 하나가 우리가 얻은 수확이다. 간식 먹는 재미 아니면 무슨 재미로 사시겠냐며 곶감에 아이스크림에 사 나를 수 있었던 때가, 참 좋은 때였다.
고심을 하던 중, 자수를 하는 지인의 인스타에서 카네이션이 곱게 수놓아진 손수건을 발견했다. "엄마, 사랑해요." 등의 메시지도 곱게 수놓아주신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최대한 큰 꽃을 수놓아 달라고 요청했다. 요양병원에서도 손수건은 쓰시니, 받으실지도 모르니까.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지만, 나는 어머니께서 이걸 결국 나에게 다시 주실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봤으니 됐다고, 너 가져다 쓰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서운해 말고 내가 가져와 써야지 생각했다. 손수건을 쓸 때마다 어머니를 기억한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웬일로 "예쁘다"를 연발하시며 손수건을 펼쳐 보기까지 하셨다. "이게 뭐냐?" "참, 예쁘다."라고 하시기에, 혹시 이건 가지고 들어가실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너 가져다 써, 됐어. 나는 많아." 이렇게 결론이 났다. 두 번 권하지 않고 내 가방에 다시 주섬주섬 넣는 날 보고 아이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입을 뻥긋뻥긋 "왜?"라고 묻는다. 엄마는 왜 저럴까. 저건 자기가 사 온 선물인데, 마다하신다고 그걸 다시 가방에 넣다니, 엄마가 왜 저러나, 생각했을 거다. 아이는 모를 거다. 나는 "엄마는 이럴 줄 알고 있었거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아직 모른다.
어머니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곱다" "예쁘다"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너 가져다 써. 나는 필요 없어."라고 마무리하셨다. 여기저기 아픈 것도, 맛있는 것이 줄어드는 것도, 잠이 주는 것도, 다 노화 때문이라고 한다. 기억이 없어지는 것도,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성격이 변하는 것도, 모두 다. 그 안에 고운 것을 보고 곱다 느끼지 못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이 나는 아주 슬프다. 내가 예쁘고 고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보다. 어머니께서도 많은 것을 잃으셨다. 이번 만남 때는 '의사'라는 단어를 기억해내지 못하시고 한참 만에 '원장'이라고 말씀하셨고. 얼마 전 할머니를 잃은 조카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병원 복도에서도 휠체어를 타신다. 하지만 손수건에 수놓아진 꽃을 보고 '곱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아직, 잃지 않은 것이 많다.
다행이다.
웬일로 어머니의 머리칼이 덥수룩하다. 항상 짧고 단정했는데, 덥수룩하다. 덥수룩하다 보니 뒷머리들이 엉켜있다. 빗을 꺼내 빗어드릴까 하고 자꾸 머리칼을 만지니, 어머니께서 내 마음을 바로 알아채고 말씀하신다. "자를 때가 돼서 그래. 이제 잘라 줄 거야. 알아서 때 되면 와서 잘라 줘." 은발의 어머니는 머리칼이 항상 부들부들하다. 만지면 감촉이 딱 좋다. 옛날부터 나는 자주, 어머니의 머리칼을 만졌다.
"여기 있으면 세상 편해. 밥 주고 빨래해 주고 아프다고 말하면 주사 놔주고. 목욕도 시켜 주고 머리도 잘라 주고 뜨뜻하고 시원해." 어머니는 마치 호텔에 와 계신 듯 말씀하신다. 아니면 어디 메이드가 있는 풀빌라나 리조트에 와 있는 것처럼 "세상 좋고 편하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밖은 더워? 덥지?" 물으신다. "하긴, 지금 5월이니까 덥겠지. 안에 있으니까 더운지 추운지도 몰러." 바깥바람을 쐬신 지 오래됐다는 의미다. 마치 호텔이 있는 듯 이야기하시지만, 어머니는, (호텔에) 갇혀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