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한창 때시네유.
일흔 하나라는 나이는 말이지요.
오늘 어머니를 방문할 때 한 명의 게스트가 있었다.
바로, 우리 엄마였다. 어머니에게는, 사돈. 자식들, 손주들, 형제지간 말고 남, 오랜만에 가족이 아닌 타인의 방문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부모님께서는 그즈음 병원 생활이 잦으신 어머니를 한 번 문병하고 싶어 하셨었다. 그래서 언제가 좋으려나 틈을 보는 중이었는데, 그럴 겨를 없이 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게 벌써 1년 전 일이다. 시어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은 내 엄마, 아빠가 주말을 보내시는 주말 농장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던 중 우리가 어머니 면회를 간다고 하니, 엄마가 따라나서겠다고 하셨다. 아빠는 서로 편치 않을 수 있다면서, 엄마만 가시겠다고. 멀지 않은 거리, 가 보면 좋지 않겠냐고.
내 시어머니는, 돌아가신 내 외할머니와 동갑이다. 엄마에게는 본인의 엄마뻘 사돈. 몸 아픈 어르신을 찾아뵙고자 하는 마음, 알 수 있다. 사돈 지간에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종종 명절에 또는 생신이나 큰일이 있을 때 과일, 고기, 돈봉투 등이 오고 간 사이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잘 지냈다. 엄마를 차 뒷좌석에 태우고 요양병원으로 가는 길, 20-30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출발했으면서, 뒤늦게 드는 많은 생각들.
우선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시어머니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엄마가 놀라시면 어쩌지. 우리는 자주 봐서 익숙해졌지만 엄마는 놀라실 수도 있는데. 일단,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시는 것부터 충격이실지도. 이번엔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병원복 차림에 휠체어에 앉은 본인의 행색을 부끄러워하시면 어쩌지. 손주랑 아들 며느리랑 오손도손 나들이하듯 들른 내 엄마를 보고, 어머니께서 부러운 마음이 드시면 어쩌지. 젊은 사돈이 부럽고 그래서 괜스레 인생이 서글퍼지실지도. 여러 가지 생각이 났지만, 어쨌든 사람을 반가워하시는 어머니임을 알아서, 게스트를 동반한 오랜만의 방문이 설레기도 했다. '어머니가 매우 반가워하시겠지' 그 생각은 모든 다른 걱정을 앞섰다.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아들 며느리의 면을 세워 주셨다. 평소처럼 우리를 많이 안아 주셨고 진심으로 반겨 주셨다. 요양병원이 아주 편하고, 의료진이 있어 마음이 놓이고, 간병인들이 다 잘해 준다고. 그리고 늙은 본인이 못 해 준 모든 것을 해 준 사돈께 너무 감사하다고(이를테면 김치라던가, 이를테면 반찬이라던가). 20-30분 동안 얼마나 자주 우리를 번갈아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고 뽀뽀해 주셨는지. 내 엄마는 이렇게나 사랑 표현을 잘하시고 고운 할머니는 생전 본 적이 없다며 감격하셨다. 아흔 줄의 노인이 이렇게 사랑이 넘치기가 쉽지 않은데, 어머니 정말 좋은 분이시라고. 노인들은 자식들 보면 아프다고 힘들다고 투정과 타령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어쩜 저렇게 좋은 말만 하시냐고. 내 엄마는 좀 많이 놀라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속을 눈치챘다. 어머니는 내 엄마가 있어서 평소 보다 더 씩씩하게, 모든 힘을 끌어올려 주셨다. 좋은 감정들을 끌어올려,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 주는 것. 그것이 본인의 할 일이라고 본능적으로 마음먹은 것이다. 역시, 어머니답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하셨다. "사돈, 올해 연세가 몇이시유?"
그리고 그 말을 하셨다. "일흔 하나? 어이구 한창 때시네유."
우리는 모두, 정말 크게 웃었다. 일흔 하나에 '한창때'라는 말을 들은 엄마도 기분이 좋고,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재치에 우리도 기분이 좋고, 본인의 말에 우리가 다 크게 좋아라 하니 말씀하신 어머니도 기분이 좋고. 우리는 모두 기분이 참 좋았다.
오늘의 방문은, 성공적이었다.
모두, 어머니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