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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ug 11. 2024

이것은 돋보기가 아니다, 독서템이다

팟캐스트 <여둘톡>을 듣고 있었다.

항상 생각하는데 <여둘톡>을 듣고 있자면 '뭐 이렇게 솔직해'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너무 솔직해서 좋고, 신선하고, 반갑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최고의 대화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솔직한 접근을 언제 어디서건 반갑게 받는다.

   

그날의 주제는 '나이듦의 속도'였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은 77년생인데, 40대 중후반 여성들이 체감하는 노화에 대해 다채롭게 이야기를 펼쳤다. 물론, 나에게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어서,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운동과 숙취와 질병과 생리 등, 그 많은 이야기 중 나에게 제일 다가왔던 주제는 단 '눈의 노화'였다. 활자중독인 나는 남들보다 눈을 꽤 혹사시키고 사는데 눈의 노화가 (팬데믹을 거치며) 급격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 1년이 넘어갈 즈음, 내 눈은 넘을 수 없는 강을 넘었다. 시력 교정술을 받은 지 10년이 막 넘어가는 즈음이었는데, 나는 안경을 다시 쓰고 싶진 않았다. 내가 어떻게 안경에서 해방됐는데, 이러다가 다시 안경 쓰게 되는 것 아냐? 그런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계속 부정했다. 팬데믹에 대한 나의 공포감은 그 외의 모든 공포감을 외면할 만한 수준이었다.


황선우 작가님은 눈의 노화에 대해 말하면서, 돋보기를 시도해 보라고 당당히 말했다. 생각보다 좋고 눈이 참 편하다고. 본인은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돋보기의 장점을 설파하며 강력 권유하는 사람인데, 정말 좋다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거부감이 약간은 있겠으나, 시도해 볼 만하다고. 다시 말해, why not? 나부터도 돋보기라고 하면 파파 할머니들이 콧등의 아랫부분에 살짝 걸쳐 놓고 책을 보다가, 누군가와 말할 때면 눈을 위로 치켜뜨는 장면이 상상이 된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돋보기란 그런 이미지일 것이다. 우체국이나 주민센터에 가면 항상 놓여 있는 그것, 모든 노인의 공공템 돋보기. 하지만 나는 '한 도전' 하는 사람이어서, 거부감 없이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생각을 하던 차에, 안과 의사 선생님께서도 나에게 돋보기를 권유하는 일이 발생했다. 유독 요즘 눈이 피곤해 안과를 방문했는데, 의사는 근시는 (아직) 매우 좋으므로 책 볼 때만 돋보기를 쓰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아니면 그냥 좀 더 버티는 것도 방법인데, 자료를 많이 보는 직업이라고 하니 돋보기 사용을 추천한다고('제가 책을 너무 많이 봐서요'라고 고백하기에는 좀 많이 부끄러워서, 자료를 많이 보는 직업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나는 솔직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과에서 써 준 '돋보기 처방전'을 들고 (바로 다음 날) 안경점에 갔다. 당장 써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황선우 작가님께서 그렇게 추천했을까. 하지만 렌즈를 고르려고 하니, 남들이 보기에 렌즈가 막 어지러이 돌아간다거나(두꺼운 안경을 오랫동안 꼈던 내 지난한 과거를 떠올리며) '누가 봐도 돋보기'여서 파파 할머니처럼 보이면 어쩌나, 소공녀 세라의 사감 선생님처럼 보이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안경사에게 마구 털어놨다. 20대 안경사는 건조한 말투로 '돋보기는 오목 렌즈가 아닌 볼록 렌즈여서, 오히려 눈이 커 보일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두 번 압축한' 렌즈를 보여 줬다. 두꺼운 렌즈에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일단 렌즈 두께부터 마음에 들어 단박에 돋보기안경을 맞추고 만다. 룰루 랄라 핑크색 안경테와 함께.


돋보기를 쓴 나는 '심봤다' 마음이 되어,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모니터 화면을 조금 당겨 돋보기를 쓰고 있다. 매우 가벼운 안경은 착용감도 좋고, 무엇보다 책의 글자가 매우 크게 보였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글자가 매우 크고 선명하게 보였다. 나도 몰랐는데, 그동안 카카오톡 오타가 그렇게나 많았던 건 다 내 눈의 노화 때문이었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면서, 아니 대체 사람들은 이 글자를 읽으라고 쓰는 건가 왜 이렇게 작게 쓰나 의문이었는데 이제 알았다. 돋보기를 쓰니 다 보인다. 모두 다 읽을 수 있는 글자였던 것이다. 덤으로 책을 읽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볼 때도 만족도가 배가 됐다. 나는 이제, 돋보기가 없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다. 보기 드물게 흥분해 돋보기를 애정하는 내게 남편은 몇 번이나 말했다.


"그렇게 좋아? 슬프다."


아니, 이게 왜 슬프지. 나는 이제 스마트폰을 볼 때 휘리릭 빠른 눈과 손으로 장을 보고 쇼핑을 하고 터치터치터치를 해 낼 텐데. 무엇보다 독서맛이 얼마나 올라갔는데. 게다가 돋보기의 특성상 30cm를 넘는 것들은 모두 focus-out. 즉, 내 눈으로부터 30cm를 벗어나는 거리에 있는 모든 것은 흐릿하게 보인다. 마치 스마트폰으로 인물 사진 찍을 때처럼. 그러므로 나는 진정 독서에만 강제 집중할 수 있다.


완벽하다. 나는, 최고의 독서템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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