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Aug 07. 2024

작가란 무엇인가

2024년 2월 16일, 나의 첫 책이 나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요즈음이지만, 내 이름이 쓰인 책이 책상 위에 있는 것이 특히 그렇다. 책상 위에 놓인 내 책을 만질 때마다 나는 (솔직히) 감격한다. 내 글이 물성 있는 존재가 되어 여기 내 눈앞에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출판사 대표님과의 첫 미팅 후, 초고의 두 배 반 글을 더 썼다. 책으로 내기에 분량도 적었지만 더 하고 싶은 말이 많기도 했다. 그리고 책의 꼴을 갖추기 위해 마지막 챕터를 추가했다. 그때는 글이 막 써졌다. 전혀 어렵지 않았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앉으면 술술 써졌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글 쓰는 게 아주 좋다.


책을 내고 난 후 두 번의 북토크를 했다. 그리고 올해 가을, 10월의 어느 날로 세 번째 북토크가 잡혔다. 세 번째 북토크는 내 어머니의 고향, 원주에서 한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소하기 직전까지 30년가량을 원주시 무실로에 사셨는데(길 이름도 예쁘게, 무실로) 딱 그 무실로에 있는 동네책방이다. 어머니가 지금도 종종 이용하시는 세브란스 병원이 한 동네에 있고, 어머니 집에 갈 때마다 들렀던 시장과 카페와 마트가 지척에 있는 그곳이다. 그곳에 가서 어머니와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책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책을 낼 준비를 하면서 종종, 내일과 다음 주와 다음 달이 기다려졌다.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일이 있다는 것은 생경하고도 기뻤다. 시간이 가는 게 얼마나 아까운데 그걸 되려 기다리다니. 그런 기쁨이 생기다니, 나는 아직도 내 첫 책을 낸 감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 한 권 내고서 나를 작가라 말하는 것이 매우 민망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내 책으로 북토크를 하면서 마냥 겸손할 순 없어서, 마냥 자존감 낮게 말하고 행동할 순 없어서, 나는 내 모든 자부심을 끌어서 끌어서 올리며 북토크를 맞이했다. 나와 내 책을 위해 참석해 준 독자들 앞에 씩씩하게 나서고 싶어서. 북토크의 좋은 점은, 책에 대한 독자들의 감상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내 지인들이 많았던 첫 번째 북토크 보다 두 번째 북토크에서 나는 '어머나, 정말?'이라고 속으로 생각한 많은 질문들을 받았다. 그런 질문과 소감들이 이따금 불쑥 떠오른다. 나의 글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책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내 다음 책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그렇다.


카카오브런치에 나는 많은 이야기를 쓴다. 요즘의 나, 나의 고민들, 나의 기쁨들, 나 사는 얘기들. 가족도 지인도 친구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브런치가, 나에 대해 제일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요즘 나에게는 기록할 시간이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이 이야기를 쓰려면 저 이야기 먼저 써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것과 연관된 다른 이야기도 써야 하는데, 어쩌지.......?'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나에 대해서 쓰지 않고서 에세이를 쓰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난 북토크 때 한 독자분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알아도 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많이 읽고 사는 나는, 몇몇 작가들에게 대단한 친밀감을 느낀다. 마치 내가 그들의 지인인 것처럼, 친구인 것처럼, 그들의 인생에 몰입하기도 한다. 실제로 박완서 작가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나는 내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 작가님의 아드님은, 따님은, 남편분은, 손녀는.. 인생사와 가족사까지 모조리 안다. 왜 안 그럴까. 옆에서 살며 보는 것만큼이나, 글로 읽어 내는 것은 깊은 공감과 이해를 부른다. 내 책을 몰입해 읽은 독자분들도, 그런 느낌을 받았나 보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작가에 대한 내적 친밀감. 그런데 글을 쓴 작가가 오며 가며 책방에서 만나는(실물을 아는) 그 누군가이고, 게다가 (북토크에서는) 눈앞에서 말을 하고 있으니, 그런 느낌이 더욱 커졌을 수도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책 한 권 분량으로 고민한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을 ‘굳이’ 종이로 엮어낸 결과물이 바로 책이기 때문이다. 글이든 영상이든 쉽게 쓰고, 쉽게 소비되는 시대에 여전히 책 한 권 분량의 생각을 삭여 내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주장을 겸손하게 검증하고 또 모은 결과물이 갖는 밀도는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김지원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2024, 유유     


책을 한 권 쓴 것에 대해, 그 일에 대해 약간의 허탈함이 생길 때, 이 단락을 생각한다. 책 한 권 분량의 생각을 삭여 냈다'라는 표현만으로도 위로를 받아서. 힘과 시간과 마음을 들여 써낸 나의 책이, 썼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다독다독, 다독임을 받은 느낌이어서.


아무튼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 이것은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제목이다. 


*백가흠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 2024,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