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Oct 01. 2024

우리 집 고딩 근황 2탄

사생활 폭로자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우리 집 고딩 근황을 '또' 쓰는 게 좀 망설여졌는데, 요즘 고딩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고딩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생각을 하다가 보니 이렇게 쓰게 되었다.


한 달 전, 중간고사 시즌이 시작되었다. 학교와 학원은 모두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난 그것도 모르고 한 발 늦어서, 꼭 보내고 싶었던 과학 학원의 입반을 거부당했다. 내신 준비반 시간표를 알려 달라고 당당히 말하는 나에게, 상담 선생님은 아주 어이없어하면서 "어머니, 중간고사 준비가 지난주에 이미 시작됐고요, 저희 학원은 방학 때부터 다니던 아이들만 내신 준비반에 들어갈 수 있어요. 지금은 입반이 안 되세요."라고 선언적으로 말씀하셨다. 미련이 남아서 내가 전화를 못 끊고 있으니, 꼭 아이를 보내고 싶다면 중간고사 끝나고 전화나 한 번 해 보라고도 하셨다.


고딩의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등교가 한 시간 빠르다. 고딩은 매일 여섯 시 반쯤 일어나 눈도 뜨지 않고 밥을 먹고, 오랜 시간 샤워를 하고(아니 대체 아침부터 온천을 즐기시나?), 7시 30분에 나를 호출한다. 얼른 차키 챙기라고. 고딩의 학교는 자동차로 가면 5분-10분 거리지만, 걸어서 가면 시간이 꽤 걸린다. 학교가 언덕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공기 좋은 산속에 아이를 내려주고, 달리기를 하러 간다. 이것이 요즘 나의 모닝 루틴이다. 보통 때라면 아이는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끝내고 10시 30분에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시험 3주 전부터는 야자가 끝나면 스터디카페에 간다. 가서 12시 30분에 집에 온다. 아니 시에 온다. 다음 들어온다는 얘기다. 그러니 나는, 고딩을 하루에 한 번밖에 못 본다.



내 브런치는 장르 별 애독자가 있다. 내가 쓰는 어머니 이야기에 절절히 동감하고 감동하시는 독자님 군단이 있다면, 한국어 교사 이야기를 재미있어하시는 독자님 군단이 있다. 또 내가 잠깐 연재했던 우리 언니의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가끔 올리는 우리 집 두 남자 이야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다. 글감이 바뀌면 내 말투(아니 글투인가)도 바뀌고 글의 분위기도 바뀐다. 좋아하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고 책도 한 장르만 읽으면 다른 장르가 읽고 싶어 지는 것처럼, 글도 같은 장르만 계속 쓰면 재미가 없다. 하루하루 날씨가 다른 것처럼, 매일의 내가 달라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가끔 고딩의 근황을 올리면 꼭 댓글이 달리는데, 같은 고딩 엄마들이다. 아주 재미있는 답변들이 달리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고딩들 이야기 중딩들 이야기에는 꼭 댓글을 달았던 것 같다. 아주 아주 길게. 아니, 같은 고딩 엄마로서 할 말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고딩은 나를 책벌레라고 부른다. 아니 어느 날은 나보고 간서치라나? '간서치'의 '간'이 '어리석을 간'인 것은 알고나 하는 소린지. 고딩은 요즘 나에게 종종 지식을 뽐낸다. 어느 날은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엄마, 이 단어 알아?"라고 묻는가 하면, 누가 봐도 자기가 비교 우위에 있는 영역-나의 영어발음-을 굳이 시키고 굳이 구박하기도 한다. 이번 달에는 특히, 중세국어에 대한 지식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음동화는 대번에 누르면 나오지만 중세국어는 답변을 버벅대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그런다. 뭐가 되었든 간에, 엄마보다 많이 안다는 것을 뽐내는 행태가 매우 할 만한 가 보다.


고딩이 10시 30분에 퇴청하시는 날은 가끔, 야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한담을 나눈다. 간식을 먹는 시간은 10분~20분 남짓. 나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이상한 헛소리를 고딩과 나누는 게 참 좋다. 지난번에는 그걸 물었다.


도현아, 엄마 담임반 학생들이 자꾸 엄마에게 수업 중에 하트를 날려.
어떡하지?


나는 학생들의 장단을 맞춰줘야 할지, 못 하게 해야 할지, 그런 걸 묻는 참이었다. 그즈음 내 학생들은 나에게 수업 중에 종종 하트를 날렸는데, 나는 그게 너무 좋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무려 '수업 중에'였으니까. 그런 나에게 도현이는 명쾌하게 대답해 줬다.


하트를 날리면? 받아야지.
일단 휘리릭 받아. 받아서 먹던가.


응? 뭔 소리냐며 일단 웃기 시작한 나에게, 고딩은 하트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받아서 먹는 것은 또 뭔지까지 순식간에 보여줬다. 이야, 나는 정말 못 쫓아가겠다.


내가 고딩의 개인기에 아주 흡족해하면서 웃으면, 고딩은 항상 앞서 나간다. 그리고 흔쾌히 말한다.


또 써. 괜찮으니까, 또 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