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사로 산 지 10년이 되었다.
현재 있는 학교에서 일한 지는 8년이 되었다. 한 학기에 적게는 30명 많게는 45명을 만났다. 1년에 4학기니까 최소 120명에서 최대 150명. 8년이면 약 천 명이다. 천 명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동안 초등학생이던 내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30대였던 나는 40대가 되었다. 이제 곧 아이는 대학에 가고 나는 50대가 될 것이다.
수많은 어학당이 있다. 내가 있는 신촌만 해도 세 개의 어학당이 있는데 모두 학생 수가 많은 편이다. 모든 산업군이 그렇겠지만 한국어 교육은 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국제 경제, 정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코로나 때는 직격탄을 맞아 학생 수가 급감했고 많은 한국어 교사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K산업이 여전히 인기가 많아서 한국어 공부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많다. 어느 시점부터 학생 수는 다시 늘었다.
한국어 교실은 갈등의 집합소다. 역사, 젠더, 정세, 경제, 문화 등. 조심스레 서로를 대하고 열린 마음으로 관계하려고 너도 나도 노력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때로 서로를 상처 주고 실제 논쟁이 되기도 한다. 잦지는 않지만 더러 있다. 그래서 한국어 교사는 모든 상황을 중립적 위치에서 교실이 중립이 될 수 있게 관찰하고 이끌어야 한다. 소란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예를 들면 일본과 한국 사이 같은 그런 정도는 이슈가 아니다. 일단 한국어 교실 속에 한국인은 없다. 한국인이라곤 교사뿐인데 교사와 학생 간에는 어떤 미묘한 분위기가 생기기가 어렵다. 하지만 세계에는 현재도 전쟁 중이고 관계가 예민한 국가들이 있다. 서로 성숙하게 배려하는 경우도 있지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젠더 이슈는 요즘 매우 민감하다. 이성 친구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고 교사들은 데이트 상대, 사랑하는 사람, 커플 등 다른 어휘로 바꿔 사용한다. 이런 변화들은 한국 내에서의 어휘 변화보다 한 걸음 빠르게 변화하므로 한국인의 언어생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중립적 어휘, 어느 한쪽도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모두가 지향하는 바다. 하지만 서로의 정상성을 주장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나는 요즘은 오히려 그 부분이 우려스럽다. 빅마우스가 정상이 되는 대화의 흐름.
한국어 교실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빔 프로젝터를 사용했었다. 데스크톱과 빔프로젝터. 지금은 전자칠판과 태블릿을 사용한다. 듣기 오디오 파일 때문에 카세트라디오를 들고 다닌 적도 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언제 있었던가 싶다.
한국어 교사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한국어 교사를 시작했을 때에도 내가 젊은 나이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동료 교사 중에서 확실하게 나이가 많은 쪽에 속한다. 이제 내가 정년까지 이 일을 할 것인가, 만약 정년까지 한국어를 가르친다면 어떤 한국어 교사가 되어야 하나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 지력도 체력도 하락하는 게 실감되어서다. 회사원이었을 때에도 그런 고민을 했었다. 회사원으로서 중년의 내가 상상되지 않았다. 지금은 마감 임박이다. 빨리 구체적인 상상을 시작해야 한다.
교실 환경은 많이 바뀌었지만, 한국어 교사의 처우는 그에 비해 제자리다. 언젠가 학회에서 한국어 전공 교수가 말했다. 한국어 교사의 수요는 예측이 어렵고, 그러므로 언제 수요가 급감할지 몰라서 정규직 자리를 만든다거나 처우를 논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그렇게 25년이 흘렀다고. K-Culture가 확실한 성장세에 있었던 지난 25년간도 그랬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앞으로라고 해서 한국어 교사의 수요를 확신하고 교사들의 처우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을까.
사실 다음의 나를 준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생의 사건사고가 튀어나오는 요즈음이다. 내가 확실히 중년이 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다. 어제도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요즘 내 주변의 경조사의 흐름을 보면서 내 나이를 깨닫는다. 경사보다 조사에 더 많이 다녀서인지, 축하할 일들에는 예전보다 더 확실하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게 된다. 진심이 더해졌달까. 내 앞의 경사는 정말 좋은 일이라는 것이,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느껴진다. 그 마음을 담뿍 담아, 말이든 메시지든 봉투든 건넨다.
그나저나, 이번 학기에는 이상하게 남학생이 많다. 나이 어린 남학생들. 교실에 들어가 보면 우리 도현이와 분위기가 별반 다르지 않은 남학생들이 네댓 명 앉아서 말도 안되는 농담들을 주고받고 있다. 초급 문법, 초급 어휘, 초급 발음으로. 이상한 질문이나 곤란한 질문을 반복하는 학생이 있을 때에는, 교사인 나를 대신해서 즤들끼리 구박도 한다. "야! 시끄러워! 그만해!" 찰떡같이 반말로. 끝날 시간이 되면 꼭 응석을 부리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 피곤해요. 집에 가고 싶어요." 그럼 나는 말한다. "안 돼요. 그리고 내가 더 피곤해요. 선생님이 더 나이가 많아요." 남고에 가면 아마 이런 광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여학생들은 세상 똑똑하고 깔끔하고 의젓하게 앉아서 우리를 관망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한 마디씩 해 준다. "아까 선생님이 말했어요." 내가 아들 엄마라서 그런가, 나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아직도, 수업이 기대된다. 아직은, 괜찮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