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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08. 2022

나의 뮤즈, 나의 시어머니

drawn by juyeun

시어머니에 대한 글을 쓴 지는 꽤 오래됐다.


어머니 집에 방문한 어느 날, 글을 모르시는 어머니께서 본인이 일 나간 날 수를 헤아리기 위해 동그라미를 매일 한 개씩 그린 노트를 보던 그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부터 1년에 2편, 아니면 3편씩 어머니에 대한 글을 쌓아 갔는데, 문득 어딘가에 올려 나 말고 다른 누군가와 이 이야기들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글을 올리기 전, 시어머니에 대한 글이라는 게 (많이) 망설여졌다.


친정어머니에 대한 글이라면, 고맙고 감사하고 슬픈 글들이 연상되면서 한편으로 글에 대한 첫인상이 조금 진부할까 염려가 된다. 그런데 글감이 시어머니라면, 이건 쓰기 전부터 왠지 진 기분이다.


힘겨운 며느라기, 웹툰 주인공 민사린에 대한 이야기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살고픈, 살아가는, 며느라기 투쟁기일.

구구절절 곡절이 많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훈훈한 타협기일까.

나는 시어머니가 너무 좋다는 (보기 드문 또는 부러운) 고백기일까.

아니면 '시금치도 싫어' 통쾌하고 시크한 블랙 코미디일까.

그도 아니면 뭘까. 과연 내 글은 어떤 글이 될까.


글을 쓰며 내가 어떤 긴장감과 말투를 유지해야 하나 고민을 종종 한다. 어떤 색깔로 써야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 아니 솔직히, 뒷이야기를 읽고 싶어질까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리고 왜 나는, 이렇게 조심스럽고 누군가에게는 '시' 한 음절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시어머니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을까. 


생각해 보면 지금도 그리고 과거에도, 나는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게 좋았다.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들을 만나 내 하루와 내 요즘을 털어 놓는 즐거움에 비할 바 없이 사실 나는 쓰는 게 제일 좋다. 수다의 효과를 넘어서는 게 나에게는 글쓰기이다. 그걸 최근에 깨달았고 점점 더 깨닫고 있다.




그런데, 시달리며 살았다고 생각했고 내 사연들이 책 한 권은 족히 넘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었다. 열대여섯 편 쓰고 나니 더 이상, 어머니에 대한 글감이 없었다아니야, 내가 십몇 년을 지나며 다 잊은 걸 거야. 어떤 기억이 있었나 어떤 추억이 있었나 곱씹으려니 생각을 쥐어 짜내는 느낌이 들었고, 실은 나쁜 기억보다는 뭉클하고 좋았던 추억만 새록새록했다. 그렇게 추억들을 써 갔고, 이렇게 오늘도 쓰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하고 이사를 하고 출장을 가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고 내가 아프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생기고. 살아가면서 내 일상과 사유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종종 했다. 어디에라도 좀 써 놓으면 마음이 나아질 것 같은 순간들이 종종 있었는데, 어쨌든 다 쓰지 않고 지나갔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글은, 쓰고야 말았다.

그렇게 1933년생 시어머니가, 나의 뮤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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