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정말 미웠던 적이 있다. 한 번 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이다. 밉다기보다는 야속하고 서운한 마음.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애틋하고 감사했던 적도 많다. 이것 또한 한 번 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이다. 내가 어머니와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깨달은 것은 이러한 내 양가적 감정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어쩜 그렇게 이랬다 저랬다 하냐고 변덕 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가족이란 태생이 그런 부분이 있다. 고맙기도 감사하기도 서운하기도 밉기도. 내가 아는 가족이란 그렇다. 아무리 유전학적으로 같은 혈육이라 해도 타인인데, 타인과 50년 60년 관계하며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50년 60년 가깝게 관계하며 지내는데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남편이 큰 사고를 당하고 처음 만난 날, 어머니는 나에게 물었다. "에미, 이사 갈 때 방향 봤어, 안 봤어?"
(우리는 남편이 사고가 난 그해 봄에,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사고는 여름에 났다.) 이런 말은 잊히지가 않는다. 휴직이 필요할 정도로 큰 사고였는데, 어머니 입에서 "고생했다"라는 말보다 우선해서 나온 말. 그 말은 '이사 갈 때 방향을 보지 않은 네 탓으로 내 아들이 사고가 났다.'라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누이가 큰 소리로 '노인네 이상한 소리 한다'며 타박하는 것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고, 어머니도 더는 그 이야기를 길게 반복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나는 참 슬펐다.
이런 말은, 쓸 수는 있어도 말할 수는 없다.
어머니도 그러실까? 어머니도 내가 마땅찮을 땐 서운하고 야속하고 그러실까? 그러시겠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내가 내 아이를 마주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10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난날이 그리울 순 있지만, 세월이 야속할 순 있지만, 내 아이가 야속할 순 없다고.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은, (깨물어주고 싶은) 아이에 대한 사랑하고는 명백히 다르다는 걸 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사랑을 주려하는 것과 마냥 그냥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마음이다. 그걸 알기에, 가는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어머니 앞에서 자신만만해진다. 내가 어떤 응석을 부려도 어머니는 '그래, 알았다' 하실 거고 다소 서운할 짓을 해도 '그래, 괜찮다' 하실 거다. 그리고 그 어떤 서툰 짓을 해도 '이게 뭐냐' 하고 웃어넘기실 거다. 아들도 아니고 며느리가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약간 뻔뻔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자신한다. 어느 날, '양가적 감정을 가지는 것으로' 나는, 시어머니와 가족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