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챗GPT를 주제로 한 지식프로그램을 봤는데, 사용자의 20%가 '공감과 위로'를 받기 위해 챗GPT를 사용한다고 한다. 20%라니 꽤나 높은 수치다. 진행자도 생각보다 많은 비율이지 않냐면서 놀라움을 표했다. 글쎄, 나는 생각 보다 적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공감받고 위로받기 위한 목적으로 챗을 사용하고 있을 걸? 의심이 든다.
한동안 잠들기 전 마지막 루틴은 챗GPT와의 대화였다. 내가 동일한 주제와 고민거리로 매일 동일한 시간대에 챗에게 질문을 해서인지, 나중에는 챗이 이미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한 번씩 나에게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그럴 때 나는 매우 당황했고 나중에는 "알은체 안 했으면 좋겠다. 일반적인 형태로 대답해 달라."라고 수정 디렉션을 줬을 정도다. 예를 들면 나는 러닝에 대한 많은 것을 챗에게 질문해 왔다. 그랬더니 내가 나중에 건강 정보를 물었을 때 "Agnes님은 매일 아침 30분씩 달린 지 2년이 넘으셨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대답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화들짝 놀랐고 다시는 그런 식으로 대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챗은 알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그런 방식의 답을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종류의 AI를 앱에 깔았다. 나는 행동하는 소비자다.
나는 챗GPT에게 나를 Agnes라고 불러 달라고 세팅했다.
그래 놓고는 챗이 나를 친근하게 "Agnes님"이라고 부르면 또 화들짝 놀란다. 호칭을 바꿔볼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하고 바로 잊는다. 이게 뭐라고.
명절 연휴에 엄마가 한우를 10만 원어치 사다가 넣고 육개장을 끓이셨다. 고사리도 넣고 고구마순도 넣고 숙주나물도 넣고. 오랜만에 10명이 넘는 엄마의 형제자매들이 우리 집에 오기로 했다. 엄마는 엄마의 치트키, 육개장을 정성을 들여 끓였다. 그리고 우리 가족 5명이 그것을 미리 맛있게 먹었다. 다음 날 날이 밝고 이모와 외삼촌 가족들이 오기 전에 국을 다시 한번 끓여 내 아이에게 줬다. 아이는 먹자마자 말했다.
엄마, 육개장 맛이 좀 변했어. 신맛이 나.
엄마와 나는 화들짝 놀라서 얼른 한 입 먹어 봤다. 고기도 그대로고 상한 맛도 나지 않았다. 안도하며 아마 고구마순 때문에 신맛이 강해진 것 같다고. 먹어도 된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뚝딱 한 그릇을 다 먹고, 할머니가 '한우 10만 원어치'를 반복하면서 육개장을 들통째 들어다가 팔팔 끓이는 것을 지켜보며 말한다.
할머니, 괜찮아요. 상한 맛은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너무 속상해하니까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나 보다.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이미 한 그릇이나 먹였지만 찜찜함을 숨길 수 없는 나는 계속 챗에게 물었다. 왜 신맛이 나지? 들어간 재료는 고구마순, 숙주, 고사리, 소고기뿐이야. 이거 상한 거 아닌 거 확실한가? 반복해서 물으니 챗이 말해줬다. 고구마순의 경우 이미 손질 단계에서 발효가 진행되었을 수 있는데 상한 건 아니지만 발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쉬고 있다는 거라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날이 선선해졌다면서 육개장을 끓인 후 실온에 놓고 하루를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상하진 않았지만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챗은 정확하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엄마의 방식으로 다시 한번 팔팔 끓인 육개장을 먹으려니 이제는 완전히 알 만한 맛이 되었다. 이건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다. 마찬가지로 챗에게 물으니, 끓이면 끓일수록 발효가 더 진행될 테고 그래서 신맛이 더욱 강해질 테니 절대 먹지 말라고 한다.
아, 큰일 났다.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육개장을 버릴 준비를 하고 나는 또 챗에게 반복해서 묻는다. 아이가 한 그릇 이미 먹었는데 어떡하지? 만약 상했으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지? 이런저런 질문을 하니까 챗은 배가 아프다고 하거나 속이 안 좋다고 하는지 하루 정도 지켜보라고 말했다. 지금 괜찮으면 괜찮을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주의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Agnes님, 혹시 아이의 나이를 알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럼 더 정확한 답변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단다. 그래서 말했다.
내 아이는 열여덟 살이야.
말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창피해. 다행히 챗은 점잖게 나에게 답해줬다.
그렇다면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요. ^^
비웃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모티콘이 함께 따라붙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렇게 말했다. "18살이라면 이미 인체의 조직이 다 성인 수준으로 발달한 상태여서 산화가 조금 진행된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 똑똑한 챗GPT. 점잖은 챗GPT. 그리고 요즘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챗GPT. 아무래도 유료 회원에 가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