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이는 나에게, 요즘 핫한 영상을 추천해 준다.
전과자, 미미미누 같은 대학에 관한 유튜브 채널일 때도 있고 대환장 기안장 같은 예능일 때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신곡 뮤비일 때도 있고 순위권에 랭크된 드라마일 때도 있다. 또는 요즘 즐겨 듣는 힙합이거나 유행 중인 챌린지일 때도.
자기 어디 갔다 올 때까지(씻는 동안 또는 숙제하는 동안 또는 쉬는 동안) 보고 있으라면서 채널고정을 강요할 때도 있는데, 솔직히 내 취향에 안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호기심도 가고 재미도 있어서 빠져들어서 볼 때가 많다.
사실 나는 영상만 보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스타일이어서, 영상을 잘 보지 못한다. 뭔가 텍스트에 특화된 인간인 건지, 책은 그렇게 한 자세로 오랫동안 줄기차게 읽으면서 영상은 그러지 못한다. 드라마도 집안일할 때 BGM으로 틀어 놓는 게 다이고, 내가 잊지 않고 찾아보는 정보성 유튜브(과학 채널 오디오북 북튜브 세바시 등)들도 운전 중에 소리로만 듣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방학 중에 나는 운전을 안 하기에, 유튜브도 팟캐스트도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아이가 이번에는 환승연애 4를 추천해 줬다. 도파민 폭발이라면서 엄마 한번 보라고. 나는 그 많은 연애 프로그램을 한 번도, 한 회차도 보지 않았다. 심지어 숏폼도. 솔로지옥이며 환승연애며 그런 이름을 대면서 학생들이 진짜 진짜 재미있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도, 한 번을 안 봤다.
연애 프로그램은 나에게 미개척 분야였다.
그 후 집에서 혼자 밥을 먹거나(나는 대부분 저녁을 혼자 먹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을 때 또는 차에서 아이를 기다릴 때면 환승연애를 봤다. 와... 출연진은 20대 중후반이었는데 진짜 말을 너무 잘했다. 즉 연애를 너무 잘했다. 다 연예인 같이 예쁘고 옷도 잘 입고 말도 잘했다. 그리고 다들 본인의 인생을 깊게 바라보고 본인의 감정에 충실했다. 그리고 연애 프로그램답게 치열하게 연애했다. 나는 보면서 아들 엄마답게, 우리 아이가 저 세계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연애하려면 잘해야 할 게 많겠네. 내 아이는 저렇게 예쁘게 자기의 본심을 잘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말투를 알아갔다. 나는 전형적인 교과서 스타일 말투를 구사한다. 게다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구어에 문어체를 사용한다. 사용하는 어휘도 좀 고루하다고 해야 할까(좋게 말하면 문학적...) 좀 그런 편이다. 나도 몰랐는데 이제는 안다. 난 좀 그런 편이다. 그런데 환승연애를 20회 차나 보고 나니, 젊은이들의 말투를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야식을 먹는 권또를 붙잡고 매일매일 그날의 질문을 하기에 이른다.
왜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렇게 '미쳤어'를 많이 사용하는 걸까?
내가 느끼기에 출연진들은 '미쳤다'는 표현을 진짜 많이 사용했다. 어떤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난감한 감정, 상황 등은 다 그 표현을 사용했다. 내가 더 설명하기도 전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욕을 못 해서 그래. 방송이니까.
아........ 하. 그런 건가. 그렇구나. 내 학생들만 해도 '개'라는 접두어를 진짜 많이 사용한다. 개좋아, 개맛있어, 개멋있어. 그거 쓰면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은 형용사를 배워야 하냐고 투덜투덜 대기도 한다. 그런데 방송이니 일단 그런 말을 사용하지 못할 테고 그런 연장선 상에서 이렇게 된 건가? 어쨌든 나는 아이의 말에 설득당했다. 출연진은 나보다는 내 아이의 나이에 훨씬 가까우니까.
그러고 나서도 매일매일 아이에게, 오늘 본 환연의 내용을 브리핑하고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가끔 같이 보면서 전체를 다 본 내가 캐릭터 설명을 해 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동안 겨울을 보냈다.
나는 가끔 고등학생 아이와 내가 우정을 나누는 기분이 든다. 이제 곧 주민등록증이 나올 내 아이. 나는 요즘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아이와 나눈다. 대화의 주제가 많아지고 아이와 공유할 내용도 많아진다. 가끔은 낮 시간에 사용한 텀블러를 닦아주면서 "혹시 여기에 맥주 담아서 마시는 거 아니지?" 농담을 던지면 아이는 "겠어?"라고 받아친다.
아이가 친구가 되면서 대화의 주제가 넓어진다. 그러면서 나도 슬슬 아이가 성인임을 받아들인다. 이제 나는 이런 이야기도 아이와 나누고 있구나. 이제 아이 아니고 아들 맞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