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
아침에 아이를 깨우러 방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이 10년 전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다. 한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자는 자세며 하얀 팔과 다리며 고슴도치처럼 하늘을 향해 날리고 있는 풍성한 머리칼까지. 아이는 십 년 전 그 모습 그대로 크기만 커져 있었다. 마치 어떤 물건의 소자와 중자, 대자를 차례로 보는 느낌이랄까. 크면 어릴 때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그렇게 내겐 너무도 귀엽고 소중한 아이는 이제 어른의 주제로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최근의 주제는 주식이다. 내가 얼마 전 뒤늦게 생애 첫 주식 투자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2천 원 3천 원씩 구매하는 소수점 구매를 시작했으니 사실 이건 뭐 투자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어쨌든 뭐든 책으로 시작하는 나는 요즘 주식, ETF, 연금 저축 이런 제목이 붙은 책을 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도 안 뜨고 밥을 먹는 아이 옆에서 나는 종종 그런 책을 펼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다른 책에 우선순위가 밀리기 때문에, 진도는 잘 안 나간다.
나는 주식 투자를 시작했음을 아이에게 당당히 알리며 질문도 하고 의견도 묻는다. 엊그제 질문은 이것이었다.
도현아, 2차 전지 주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아이는 듣자마자 이렇게 반응한다. 그거 전기차가 요즘 별론데 괜찮겠어? 오호. 수능 국어 공부한다고 비문학 지문을 좀 읽더니,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아니면 SNS에서 돌아다니는 뉴스를 좀 본 건가? 아니면 그냥 얻어걸린 건가? 나는 심층 질문에 들어간다.
정말? 근데 2차 전지가 뭔데?
사실 나도 잘 몰라서 정말 솔직히 물은 거다. 이렇게 한 발짝 더 들어가면 아이가 좀 주춤하는 게 보인다. 그러면서 이과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뼛속까지 문과인 엄마에게 겸손한 투로 설명을 시작한다. 그게 배터린데 말이야, 전기차에 들어가는데 말이야, 요즘 전기차가 좀 주춤하니깐 말이야... 그럼 나는 진짜 빠져들듯이 아이의 말을 경청한다. 적절한 리액션이 저절로 나온다.
나는 이런 대화에 있어서는 아이의 말을 진리로 친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대화를 할 때도,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 대화를 할 때도 아이의 말은 항상 궁금하고 항상 신비롭다. 얼마 전 2027년 신검 대상자임을 알리는 편지를 병무청으로부터 받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 아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순진하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 있어서는 통찰이 느껴진다. 반인반수처럼, 반은 초딩 반은 지식인을 보는 느낌. 사회의 흐름을 읽는 느낌이랄까? 또 어떤 때는 세 보이려고 냉소성을 기본으로 장착한 것도 같다. 어차피, 그렇지 뭐, 되겠어? 이런 말을 할 때는 잘 모르는 분야, 생각하기 싫은 분야, 걱정되고 슬픈 주제에 대해서는 냉소성으로 두려움을 감춘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갈등하고 부딪치고 좌절하고 그런 일을 셀 수 없이 반복할 텐데, 본인의 말을 진리로 쳐 주는 사람이 한 명쯤은 여기 집에 있다는 걸 아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의 말을 오늘도 빠져들듯 경청한다.
그런 마음으로 한창 대화에 집중할 때 아이가 말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지 말고 엄마도 좀 알아보고 사.
하지만 아이는 항상 깨어 있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