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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30. 2022

저희 시어머니가 33년생이시거든요

올해 딱, 아흔이시죠.

동료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빈소에 다녀왔다.

이제는 그래도 영 낯설지는 않은, 조문의 절차를 거친 후 동료와 한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꿔 놨는데, 특히 경조사에 대한 의례와 경조사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 가짐을 바꾸었다. 경사든 조사든 작고 조용히 하는 게 이상하지 않고 현명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사든 조사든 많은 어려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객들과 조문객들의 발걸음에도 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마스크를 쓴 채로 2년 만에 갔던 결혼식이 유난히 즐거웠던 것을 보면, 식사도 못하면서 확진자가 치솟을 때 갔던 친구 부모의 장례식이 지극히 슬펐던 것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음... 31년생요"

"아흔둘이시네요." "어떻게 바로 나이 계산이 되세요?"

"저희 시어머니가 33년생이시거든요. 올해 딱 아흔."


고인은 우리 어머니보다 두 살 많으셨다. 나이 순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문을 가면 의례 그렇듯 나이를 묻는다. 우리 어머니도 나이가 참 많으시구나. 언젠가 이런 장면 속에 내가 있을 날도 오겠구나, 그런 생각도 잠시 한다.




어릴 때 종이 신문을 보던 시절, 항상 신문의 '띠별 운세'를 확인한 기억이 난다. 동물 그림과 함께 각 띠 옆에는 그 띠에 해당하는 출생 연도가 차곡차곡 쓰여 있었는데, 내 나이는 없었다. 아빠 말이,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없다고 하셨다. 대학 갈 때쯤 내 나이가 등장했다. 이제 나도 띠별 운세를 볼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운세를 봤다. 신문을 보지 않게 된 후에도 종종, 핸드폰 운세 사이트에서 그날의 운세를 봤던 것 같다. 오랜만에 띠별 운세를 찾아봤다. 이제 내 나이는 띠별 운세의 중간쯤에 있다. 나랑 띠가 같지만 나보다 열두 살 많은 사람, 스물네 살 많은 사람이 앞에 있고 나보다 열두 살 적은 사람, 스물네 살 적은 사람이 내 뒤에 있다.


부모의 죽음을 보는 건 자신의 종말을 전보다 훨씬 강도 높게 느끼는 일이다.
이제는 자신이 '맨 앞줄에' 서는 것이다. 이 느낌은 우리 경험의 일부가 될 것이다.

-노년 끌어안기, 로르 아들레르, 116쪽 중


아직 내가 띠별 운세의 맨 앞줄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이미 내가 중간까지 와 버렸다는 것. 비보인지 낭보인지 모를 두 가지 소식을 함께 들은 기분이다. 얼마 전에도 동료의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석 달이 지난 시점에서도 아직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삽시간에 눈물이 차오른다고 했고, 장례식 후 한 달 동안은 밤에도 1~2시간 이상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부모가 죽으면 10년 간대요." 아무것도, 말로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진심을 담아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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