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May 25. 2022

한국어 교사 되는 거, 쉽지 않아요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왜 한국어 교사가 되려고 하세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당시 나는, 아직 회사를 그만두기 전이었다. 1년의 육아휴직 중이었고, 아직은 한 중견 기업에 재직 중이었다. 난 퇴사를 염두하고 육아 휴직을 신청한 상태였기 때문에, 퇴사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대학원 입학 준비를 했다. 어쨌든 난 아직 서류 상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좀 큰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면접관들께서 많이 의아하셨던 것 같다. 해당 대학원에 입학하고자 면접 중인 나에게, (도대체) 왜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한국어 교사가 되려 하느냐고, 진심으로 궁금해하셨다.


"레드 오션인 건 이미 알았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금은 결정하고 행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그 외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했지만 난 교수님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면접에는 합격했고 그 후 정말 즐겁게 2년을 보냈다. 심지어 논문 쓸 때 조차도 진정 행복했다.


한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건 절대 아니었다. 난 그 직업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고, 10여 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퇴사라는 결정은 어느 누구도 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용기를 크게 냈다. 외부적인 요인이나 회사 사정이 있었던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어느 순간 결정이 되었다. 나는 정신적 피로보다는 육체적 피로를 더  견뎠던 것 같다. 10년 다니며 20년 치 체력을 끌어다 썼으니, 나는 아직 젊은데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퇴사를 저지른 후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 인생에서 퇴사와 전직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래서 면접관들의 질문에 답할 논리도 없었다.





퇴사를 저지른 후 나는 더는, 프로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쭉 어느 것에 건 어느 세계에 건 아마추어이자 주변인으로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일을 하다가 한 사람만 일을 하니 당연히 소득도 반으로 줄었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달라진 경제력이 다만 낯설고 낯설었다. 내가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고 있을 때, 한국어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검색하면 검색할수록, 현직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해 볼수록, 늦은 나이에 전공을 바꾸는 일이니 공부도 어렵겠지만 직업으로서의 안정감이나 만족도도 매우 떨어지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시그널은 모두 부정적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에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난 공부가 참 좋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별개인 게 문제긴 한데, 나는 공부가 참 좋다. 10여 년 회사원의 삶을 살면서 뭔가 많이 읽고 쓰는데, 계속 읽고 쓰는 것에 목말랐다. 진정 이렇게 쭉 살아야 하나, 보고서 말고 내 생각을 쓰고 싶고, 데이터 말고 글을 읽고 싶었다. 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공부하면서, 10년 쌓인 갈증이 모두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한국어 교육은, 언어도 좋아하고 말도 좋아하는 내가 탐닉하기에 정말 딱 적당한 전공이었다(언어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내 외국어 실력이 그다지 그렇다는 게 두 번째 문제이긴 하다). 필드에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을 내가 기대됐고, 경험을 쌓고자 시작한 시간 강사 시급이 매우 낮았지만 이상하게 견뎌졌다.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았지만, 공부하는 내가 참 좋았고 행복했다.  


돈 받고 하는 일은 뭐든 힘들지 않을 리 없다는 내 섣부른 믿음이, 나를 첫 번째 직업에 10년간 묶어두었다. 하고 싶은 게 없긴 했지만, 수많은 직업 중 꼭 그 직업이어야 하는 이유 또한 없었다.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지만, 어차피 꿈꿨던 일이 아니니까 무엇이든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아도 좋았을 것 같다.


아마추어, 주변인의 삶을 꿈꿨던 내가, 어찌어찌해서 다시 조직에 들어왔다. 이제는 회사원으로 산 시간 못지않게 한국어 교사로 산 시간도 매우 길다. 나는 잘 가르치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있고, 어쩌면 (제도권에서의)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문득문득 든다. 또 공부를 하기에는 내 나이가 (심하게) 많긴 하지만, 한국어 교사의 처우가 좀 열악하기 때문에 제도권에서의 공부를 한다면 밑지는 장사가 되긴 하겠지만, 아직도 철없이 뭔가를 새롭게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아마 내가 한국어 교사로 살면서 여러모로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밝고 유쾌한 학생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