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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y 24. 2022

밝고 유쾌한 학생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꼭 그래야 할까요

한 학기 수업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팔 할이 학생이다(아니 팔 할보다 더 많이, 구 할이 학생이다).

한 학기 교사의 수업 만족도를 결정하는 것도, 한 학기 교사의 피로도를 결정하는 것도, 팔 할이 학생이다.

성격이 좋은 학생들이 많은 반을 맡은 학기에는 뭘 해도 진심으로 피곤하지는 않다. 아무리 교실이 춥고 아무리 첨삭해야 하는 과제의 양이 많아도, 심지어 kf94 마스크에 숨이 턱턱 막히고 손세정제에 손이 부르터도 사실 괜찮다. 그런 나를, 지치게 하지 못한다.

우리를(나를) 지치게 하는 건, 예민하고 까칠한 학생들이다. 교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과제를 귀찮아하고, (상호 작용이 필요한 언어 수업에 와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학생들. 전반적으로 매사에 부정적인 학생들. 그런 학생들이 많은 반을 맡은 학기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발에 걸린다. 수업을 아무리 꼼꼼히 준비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교실에 들어가도, 아침 9시 10분부터 아이스커피가 (투샷) 필요하다. 목이 아프거나 다리가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학생들, 너무 사랑스럽다. 공부 머리가 없으면 어때, 즐거우면 되지. 사실 그렇다. 입시 학원이 아니기 때문에,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 스스로 한국에 와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성적의 압박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성적의 압박에서 자유롭다는 건, 매우 큰 자유다. 수업을 즐기기 딱 좋은 최적의 조건. 그런데 왜, 스스로 즐겁고자 선택한 수업에 와서,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절대 움직이지 않으며, 옆에 앉은 이들 모두를(특히 교사를) 난처하게 할까. 처음 한국어 교사가 됐을 많이 했던 생각이고, 아직도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제 나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이 왜 긍정적이어야 할까? 왜 교사를 편안하게 해야 할까? 무례한 것과 상냥하지 않은 것은 다르지 않을까? 학생은 그냥 이런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동시에 나 자신을 지키는 것뿐인데. 내가 이 자리를 지키려면 반드시 클래스메이트 또는 날 가르치는 교사에게 마음을 열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긍정에 대한 강박이 있다. 내가 긍정적이려고 노력하니까, 긍정적이어야 갈등이 없으니까, 긍정적이지 못한 학생을 우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때론 도전적일 수도, 때론 불만이 있을 수도, 때론 불친절할 수도 있다. 내가 (유난히) 다정한 사람이라고 학생들도 나에게 다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며 조금 더 선명해진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학생이 있다면, 낙엽만 떨어져도 우는 학생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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