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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n 10. 2022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마음

존중과 돌봄 사이

사춘기 아들과의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아직은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 동시에 한 인격체로서 인격적 존중이 필요하기도 한 나이. 아이를 키우며, 아이가 클수록, 종종 더 자주 고민에 빠진다. 본인의 의사를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존중해 줘야 할까. 친구 같은 부모, 아이와 대화하는 부모라는 이상향을 품는 바람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실패하는 건 아닐까 문득문득 혼란스럽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아이에게 좀 어려운 주제를 자꾸 반복해서 물은 적이 있다. 사실, 엄마 아빠도 어떤 결정이 옳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에 '아이의 의사가 중요하다'면서 선택을 아이에게 미룬 것이었다. 서너 차례 똑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각각의 선택지를 선택했을 때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지 설명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난 그렇게 어려운 건 결정할 수 없어. 나한테 왜 자꾸 그렇게 어려운 걸 물어봐." 그때 참 부끄러웠다. 우리는 선택이 어려운 과제를 만나면, '아이의 의사도 중요하다'라는 핑계를 대며 아이에게 슬쩍슬쩍 선택을 미루기도 했던 것이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 부모가 나서서 정리해 줘야 할지, 본인이 겪으며 깨닫게 내버려 둘지, 그런 류의 일들. 예를 들면 공부, 친구 관계, 운동, 여가 시간, 전자기기 사용, 그런 것들.





아흔의 시어머니에게 이사라는 이슈가 생겼다. 성인이므로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 것이 맞는데, 어디까지 의사를 존중해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어머니의 의사를 항상 존중한다. 시골 분이셔서, 건강이 많이 약해지셔서, 경제관념이 30년 전이셔서, 혼자 금융 업무를 볼 수 없으셔서, 우리가 대신해 드려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어머니는 내 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선택이 어머니의 건강에 나쁘다면, 어머니의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면, 어머니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그것도 모두 존중해 드려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거짓말이 필요한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어쩌면 어머니께서도 우리의 거짓말을 기다리고 계신 것은 아닐까. 자식들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물자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올곧은 판단을 해야 하는 마음의 짐을 90의 나이까지 지게 하는 것이 맞을까.


다섯 살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과, 90세 노인을 이사시키기 위해 집이 곧 헐린다고 거짓말하는 마음은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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