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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n 24. 2022

내 아이가 겪을 청춘이 오고 있다

내 청춘은 가지만

40대가 되면서 부쩍 나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이제 확실히 40대에 접어들었구나, 이제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30대로 보이기는 힘들겠구나. 아무리 사진 어플을 활용해 사진을 찍어 보아도, 10년 전 또는 15년 전 필터 없는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것에 댈 게 아니게 시들었구나. 그런 생각들.


멈춰있던 캠퍼스가 활기를 찾은 지도 벌써 서너 달이 넘었다. 22학번은 그래도 엠티도 가고 축제도 하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꽁꽁 어딘가에 숨는 삶은 이제 벗어난 듯하다. 만우절, 오전 수업 후 커피를 사기 위해 캠퍼스를 가로지르던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캠퍼스 한가득. 그냥 봐도 대학생들인데 모두 교복을 입고 캠퍼스를 누빈다. 알고 보니 학교 측에서 진행한 만우절 깜짝 이벤트에 교복을 입고 오는, 교복을 입고 오면 뭔가 할인되는 그런 이벤트가 있었나 보다. 꼭 이벤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학생들이 교복 데이를 한다는 말은 종종 들었던 것 같다. 무려 팬데믹이 오기 전, 4년 전 듣던 이야기다.


다시 학생들이 캠퍼스 잔디밭에 눕기 시작했다. 한낮 뙤약볕에 축구를 차기 시작했고 삼삼오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잔디밭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아이돌 춤을 연습하는 광경도 다시 곧 보이겠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눈부시게 찬란하다. 찬란한 청춘들. 나는 영화를 보듯 그들을 보고, 이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시절이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연달아 생각한다. 내 아이, 중학생이 된 내 아이도 곧 커서 저런 삶을 살겠구나. 얼마나 찬란할까. 내 아이가 겪을 청춘이 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기뻐지고 조금은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가끔, 올해 봄이 지나도 내년에 또 봄이 오는 것처럼, 인생의 어떤 시기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착각할 때가 있었다.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절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들을 애정 없이 보내는 실수도 범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나가면 모든 게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중학교 때 한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너희들은 앞으로 재미있을 일이 얼마나 많니.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큰 사건들, 이를테면 대학 입학, 결혼, 출산 등등. 이제 나는 결혼도 했고 애들도 낳았고, 그 애들도 다 커버려서 재미난 일이라곤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너희들은 얼마나 좋니. 행복할 일만 앞으로 남았잖니. 그러니 행복해해라, 항상." 그 얘기를 들으며 난 좀 몰입했던 것 같다. 뭔가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순간 기대되는 충만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생각이 가끔 나는 걸 보면.


수업을 하면서 가끔 수업이 딴 길로 샐 때가 있다. 학생들 때문일 때도 있지만, 사실 나 때문일 때도 있다. 학생들의 눈망울을 보며,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내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 그럴 때 나는 가끔 슬며시, 삼천포에 다녀온다. 하루에 4시간씩 3개월 동안 200시간을 만나는데, 지식만 전달하는 관계는 너무 헛헛하지 않을까. 그런 변명을 속으로 하며, 진심을 말한다. 그들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짧은 한국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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