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내 인생에 큰 비극이 있었다. 사고가 아니라 비극이라고 꼭 말하고 싶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는 가족의 사고에 대해 나오는데, 저자는 '비극'이라고 말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고'라고 말하면 너무나 평범해지기 때문에 본인은 꼭 (가족을 9.11 테러로 잃은 그 사건을) '비극'이라 칭한다고.
물론 내 남편은 현재 완전히 나았다.
2019년 8월 어느 날. 나는 맛있는 저녁을 먹었고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쇼핑 중이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나는 매우 흡족한 기분이었다.
그때 그 전화가 왔다. 남편이 계곡에서 낙상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전신에 심한 타박상과 찰과상. 찢어진 곳은 꿰맸지만 턱이 바스러졌다. 병원에서는 남편의 잇몸 빼곡히 스크류를 박았다. 그리고 턱을 재건하는 수술을 했고, 윗니와 아랫니를 철사로 묶어 버렸다. 병원에서는 어려운 수술이고 재수술의 위험이 있다면서도 모두가 한 목소리로,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그 후 두 달 동안은 완전한 유동식만을 먹으며 지냈다. 매일매일 살이 빠졌다. 핫초코와 두유, 중증 환자들이 먹는 뉴케어. 이런 것들을 두 달간 빨대로 마셨다.다시 입을 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남편은 체중이 15kg 빠져 있었다.
각종 수술과 시술이 이어졌고, 나는 입사 후 처음으로 3일 간 내 수업을 다른 강사에게 대강 맡겼다. 한국어 교사는 학기 중 담당 수업을 빠지는 게 쉽지 않다. 필요할 때 자유롭게 쓸 연차가 없을뿐더러 내 수업을 대체할 인력을 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사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모든 교사/강사들이 마찬가지로 겪는 곤란함이다. 내가 수업을 못 하면 누군가 다른 인력이 수업을 채워야 하고, 내 학생들은 연속성이나 안정감 등에서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우리는 대강의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데그날 새벽. 나는 담당 교수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 피투성이의 남편을 놓고 병원 문을 나설 수 없다고.
3일 후 교실에 들어섰더니, 한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남편, 괜찮아요?"
건너 건너 다른 선생님들께 내 남편이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지금은 괜찮냐고, 선생님 마음이 아프겠다고, 금방 나을 거라고, 띄엄띄엄 학생들은 조심스레 질문과 응원을 쏟아 냈다. 한국어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아니었는데, 우연찮게 그즈음 우리가 배우는 챕터의 제목이 <병원과 증상>이었다. 그래서 나도 띄엄띄엄 배운 단어들을 사용해 가며 '턱을 다쳤다, 피가 많이 났다, 수술을 했다, 입원을 했다, 먹을 수 없다, 마실 수만 있다.' 이런 말들을 채워 나갔다. 금세 학생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요즘처럼 마스크를 썼더라면 내 표정도 그들의 표정도 숨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좀 덜 민망했을 텐데. 우리는 그때 표정을 모두 드러내가며 위로하고 응원하고 감사해했다.
나는 종종 잊지만, 내가 궈여워마지않는 그들은 사실 어엿한 성인이다. 열아홉부터 예순아홉까지, 나이도 다양하다. 한국어가 초급이니까 가끔 나는 필요 이상으로 그들을 아이 보듯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충분히 나이에 맞게 성숙하고, 기대 이상으로 나를 보듬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