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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l 29. 2022

학생들이 나를 놀릴 때

#1. 눈썹 없는 선생님


"선생님 눈썹 없어요, 아하하하하하하하"


나는 평생 앞머리가 없었던 적이 없다. 이마가 다소(?) 넓기 때문에 앞머리는 필수. 아무리 더운 여름, 아무리 습한 장마철에도 이마를 꼭 꼭 앞머리로 가린다. 그런데 그날은 좀 바쁜 날이었다. 너무 바빠서 눈썹을 그릴 틈이 없었다. 하지만 난 앞머리가 일자에 가깝게 눈 위까지 내려와 있고, 평소에도 눈썹을 그리는 건 그저 나를 위한 위로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교실에 당당히 들어갔다. '아무도 모를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그 반에서 제일 목소리 큰 학생이 저렇게 외친 거다. 단, '눈썹'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초급 학생들이었기에, 온몸으로 선생님의 눈썹을 가리키며 눈이 반달이 되게 웃어 댔다.

"선생님 눈썹 없어, 아하하하하하하"

덩달아 같은 반 학생들이 다 웃어 버렸고, 나는 결국 학생들이 워크북을 푸는 동안 교탁 밑에 숨어서 필통에 있는 연필로 슥슥, 눈썹을 그렸다. 그러고 나서 당당히 일어서서 "이제 됐냐?" (물론 속으로만)



#2. 남동생......?


나는 그날 가족과 호칭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었다. 언니, 오빠, 이모, 동생, 형, 큰엄마 등등 한국의 가족 간 호칭에 대해 가르칠 때, 학생들은 순간 집중하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순간 너무 복잡하다며 머리를 흔들기도 한다.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되는데, 뭐가 이렇게도 복잡하냐는 눈빛이다. 실제로 영어권 학습자들은 모두 이름을 부르거나, 모두 She or He로 통한다. 호칭 지칭 그런 것도 없이 정말 간단하다. 실제로 내가 즐겨 보는 미드에서는, 심지어 손녀가 할아버지를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게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기도, 배우고 싶지 않아하기도 한 것들을 가르칠 때에는 수업에 재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날도 모든 새 단어들의 설명을 끝낸 후 비장의 카드-내 가족사진-을 짜잔 슬라이드로 보여줬다. 거기에는 우리 부모님, 내 가족 3명, 그리고 언니. 이렇게 총 6명이 있다. 한 명씩 가리키며 "누구일까요?" 물으면 선생님의 엄마, 아빠, 남편, 까지는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 하나와 나보다 키는 작지만 매우 어려 보이는(우리 언니는 심하게 동안이다) 여자를 보고는 멈칫한다. 과연 저 여자는 선생님의 동생일까 언니일까. 선생님의 아이 같은 저 남자아이는 뭐라고 부르더라(아들, 딸이라는 단어는 잘 모르는 수준이기에). 그때부터 유유자적 나는 분위기를 즐기면 되는데, 그날은 정말 뜻밖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10살 아이를 가리키며) "선생님(의) 남동생???"

그날 나는 진짜 크게 오랫동안 웃었다. (이 친구들이, 제대로 날 놀린다.)




#3. 음악 들으면서 공부가  안 돼요?


문법 '(으)면서'를 배우는 날이었다.

그날의 목표 문법을 배운 후, 학생들의 70-80%가 그것을 이해한 후에 우리는 신나게 문장을 만들어 낸다. "이야기하면서 커피 마셔요." "샤워하면서 유튜브를 봐요(정말?)" "밥을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봐요." "요리하면서 먹어요(삼겹살인가?!)" 신나게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만들어 내다보면 결국 그 문장이 나온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해요."

나는 이 문장에서 항상 멈칫하는데, 사실 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게 어려운 스타일이다. 나에게 음악이란 대부분 K팝인데, K팝에는 물론 가사가 있고, 가사에 집중하게 되고, 그럼 오히려 음악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 모름지기 노동요란 가사가 없는 클래식이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내 고민을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가 돼요? 흥얼흥얼 따라 하게 되거나 자꾸 가사를 듣게 되지 않아요?" 이 부분에서 나는 정말 흥얼흥얼 노래도 하고 둠칫 둠칫 리듬도 탄다.


평소 내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과연 교실에서 저럴까 상상하기 어려울 테지만, 나는 정말 교실에 들어가면 그렇게 한다. 평소보다 여러 톤 높은 소리로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고,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면 몸짓 손짓 발짓 가용 자원이 모두 동원된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무튼 내가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좀 사실은 어렵지 않냐고 말을 꺼내면, 많은 학생들이 사실 자기도 그렇다고, 그래서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는 편이라고, 집중이 진짜 안 된다고 솔직히 말한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다들 어리둥절. 어리둥절한 눈, 어리둥절한 마스크 핏(입을 볼 수 없지만 마스크 핏으로 충분히 느껴진다), '아닌데?' '나는 멀티태스킹이 돼서 괜찮은데?' '나는 두 개가 충분히 분리가 되는데?'라는 표정을 단체로 지어 보였다.

다소 얄밉기로 그날의 컨셉을 정한 나의 귀여운 학생들 앞에서, 나는 빠르게 인정해 버렸다.

"아, 선생님은 옛날 사람이에요. 나이가 많아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게 어려워요."

키득키득 웃는 학생들. 어쨌든, 엔딩은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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