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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ul 19. 2022

노인과 약(藥)

약을 먹는 게 자연스러운 나이라니요

"어머니 연세에, 이 정도 약은 많은 거 아냐. 이 정도면 양호한 거야."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당뇨약, 혈압약 외에는 드시는 거 없잖아. 이 정도면 다행이지 뭐."

"어머니 연세에 수면제나 우울증 약 하나 안 드시는 분들 없어. 다들 그래."


어머니가 드시는 어마어마한 양의 약을 보고 걱정스러워하는 막내며느리에게, 많은 분들이 해주신 말들이다.


어머니가 어머니 인생에서 제일 큰 수술을 하신 후 어느 날, 어머니 찻상에 놓인 약을 찬찬히 훑어본 적이 있다. 고혈압은 하루 식전에 한 번, 당뇨약은 하루 몇 번, 정형외과 약은, 비뇨기과 약은...... 나도 구분하기 어려운 많고 많은 약을 드시던 어느 날. 결국 탈이 나시고야 말았다. 진통제의 간격을 잊고 연달아 세 차례 드셨고, 위장 장애가 온 거다. 어머니가 스스로 챙겨 드신 거니, 남은 약의 개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간병하시는 시누이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미 먹어버린 약이니 어쩔 수 없었고, 약의 독이 빠져나갈 때까지 앓고 나신 후에야, 괜찮아지셨다.


내 시어머니 나이가 90세, 내 외할아버지 나이가 95세, 그 연배의 노인 분들이 드시는 약을 보고 매번 깜짝 놀란다. 일단 약의 양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약의 복용이 일상화되어 있다. 감기약만 먹어도 몽롱해지는 몸의 변화를 느끼는 나로서는, 상상이 어려운 일상이다. 약이란 것이 몸에 주는 작용만큼 반작용(즉, 부작용)도 있는데, 약이 제 기능을 하려고 얼마나 많은 반작용을 일상에 남길까. 나는 콧물감기약 하나에도 잠이 오거나 입맛이 없어지는데, 도대체 노인들은 얼마나 생활의 질이 서서히 저하되고 있는 걸까. 노인이 되면 음식의 양도 줄어들고 대사도 저하된다는데, 그것과 반비례해 먹는 약은 늘어난다.

그래서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와 더불어 모든 일상이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건, 과연 괜찮을까. 지나온 인생과 현재의 일상이 희미해지고 섞이는 혼돈, 노화의 끝에 그게 기다리고 있다니. 그런 분께 며느리로서 가끔(아니 사실 종종) 서운함을 품었다는 게 부질없고, 부끄럽다.


나는 가끔 며느리가 된다. 시어머니를 대하는 며느리 입장이 되어 서운하고 고깝다. 그리고 금세, 다시 90 노인을 바라보는 (아직은 젊은) 40대가 된다. 고까울 땐 마냥 고깝지만 애틋할 땐 또 마냥 애틋하다. 양가적 감정. 양가적 감정이 생긴 걸 보니, 이제 우리는 정녕 가족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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