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 발랄한 우리의 막내 라인

교실에 2003년생이 등장했다.

by Agnes

출석부에서 2003년생을 발견한 날, 드디어 이렇게 되었구나 싶었다.


내 아이랑 별반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학생들. 어쩔 때 보면 말투도 습관도 입맛도 K중딩이랑 매우 흡사하다. 그들은 수업 시간에도 구르프를 장착하고(구르프를 장착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학관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어디에서 구르프를 빼는 것인가?!), 대학 캠퍼스를 자전거나 전동킥보드가 아니라 무려 보드를 타고 누빈다. 선글라스와 헬맷은 필수다(헬맷을 꼭 끼니, 이건 또 얼마나 기특하고 다행인지). 한 학생이 전기 보드의 충전소가 학교 안 어디에 있는지를 물을 때, 진심으로 나는 당황했다. 아니, 사실, 한국은 아직 전기차 충전소도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실상을 말해야 하는 건가 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밤새 춤을 추는 학생들도 더러 있는데, 댄스족은 당연 아침 9시 수업에 지각한다. 2시-3시까지 춤 연습하고 버스킹하고 집에 들어가기 때문에, 도저히 9시 수업은 지각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단다. 연달아 며칠을 지각하는 우리 반 힙합 소녀에게 따로 주의를 줬더니, 다음 날부터는 아예 1교시를 결석해 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피어싱을 찰떡같이 소화하고, 여름이 되니 몸 곳곳에서 타투가 발견된다. 한 학생의 등에서 "조금 부족하지만 나는 소중한 사람이에요."라는 한국어 타투를 발견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뭉클해져 눈물이 날 뻔했었다. BTS의 슬로건처럼 느껴지는 "Love youreself"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래,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부족하지만 하나같이 소중한 사람들이지. 그걸 소리 내서 말할 수 있는 세대에 사는 너희들은 그 옛날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들은 한국어 문법 규칙은 잘 모르지만 '생활 한국어'는 발음도 적용도 수준급이다. 감탄사나 짧은 표현만 들으면 완전 한국 대학의 새내기다. "대박" "너지?" "잘난 척" "좀 이상하지 않아?" "헐" 카톡 메시지만 보면, 완전히 한국 학생들이다.


하루는 한 학생이 유인물을 안 가지고 왔다. 며칠 동안 반복적으로 필요한 유인물이어서, 절대 집에 놓고 오지 말라고 당부의 당부를 반복한 유인물인데 우리의 막내 라인이 그걸 두고 왔단다. 밤에 유인물로 공부하다가 깜빡 잊고 두고 왔다니 원 참나 뭐라 할 수도 없고, 잠시 학생들이 워크북을 푸는 사이 강사실에 가서 복사를 해 왔다. 계단으로 뛰어갔다 온 내가 헉헉대며 복사물을 주려고 하니 학생이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순간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복사물을 주면서 말했다. "한 장, 100원." 보통 이렇게 말하면 아하하하하하 웃고 지나가기 마련인데, 이번 막내 라인은 순발력이 기대 이상이다. "카드도 돼요?" 이런 이런, 니가 이겼다.


가끔 X세대인 내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면 친구들이 말한다.

"우와, 나는 못 쫓아가겠다."


이번 학기 담임 반에 2003년생이 5명이나 된다. 무려 5명이다. 나는 5명의 깜찍 발랄함에 정신 못 차리고 허둥대기도 하고, 너무나 귀여워 마지않는 내 눈빛을 다른 학생들에게 들킬까 애써 조심하기도 한다. 다음 학기에는 또 몇 명의 막내 멤버가 영입되려나,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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