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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ug 08. 2022

문화의 영역인가, 사람의 영역인가

우당탕탕 난닝구

#1. 이것은 혹시 난닝구


지난 2년, 온라인 수업을 하는 동안 줄곧 학생들의 상반신만 봤다. 상반신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것이, 상반신이라기보다는 얼굴, 많이 보이면 어깨와 가슴 윗부분이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카메라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첫 시작은 윗옷은 확실하게 갖춰 입는 것이었다. 하지만 온라인이 생활화되면서 점점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나중에는 목까지만 보이더니, 어쩔 때는 코까지만, 그리고 급기야 이마만... 보이기에 이르렀다. 


팬데믹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의류는 상의만 신제품을 내놓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패션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인데 상의만 보고 살게 되었으니, 아예 상의에만(그것도 정면 가슴팍에만) 크게 브랜드 로고를 새기는 것이다. 또 여러 가지 액세서리들-피어싱이라거나 헤어 제품-이 인기를 끈다는 뉴스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의가 보이는 세계에서 통하는 말이지, 이마만 보이는 우리 수업에서는 다 소용없는 말이다.


수업할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

"얼굴을 좀 보여 주세요..." (선생님 무서워요...)

실제로 어두운 조명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경우에는(시차가 다르거나, 룸메이트가 옆에서 자고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눈동자의 흰자만 동동 떠 있는 게, 완전 호러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깜짝 놀랐다. 한 남자 학생이 난닝구만 입고 나타난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집에서 입으시는 그 하얀색 끈 메리야스... 이른바 러닝셔츠. 이걸 어찌 말해야 하나. 아니, 말을 하는 게 맞을까. 말한다고 하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3~4일 고민하던 사이 시간이 훌쩍 가 버렸고, 그건 내가 상상했던 속옷이 아니라 가슴팍에 파란색 글씨가 쓰인 민소매 티셔츠라는 것을 알게 됐다.(큰일 날 뻔했다)


그래도 어깨만 보이는 날은 영락없는 메리야스인데...


#2. 에세이는 역시 빨간색 볼펜이지


같은 학생이다. 러닝셔츠 그 친구는 꼭 빨간색으로 숙제를 써서 냈다. 쓰기 숙제 한 바닥을 항상 제목부터 빨간색으로 썼다. 빨간펜 첨삭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바탕이 온통 붉다. 이걸 어찌 말해야 하나. 말을 하는 게 맞기는 할까. 말한다면 뭐라고, 왜 안 된다고 말해야 하나. 어느 날 용기 충만한 나의 동료 선생님이 말했다.


"까만색으로 쓰세요." "선생님 눈 아파요."

그리고 돌아온 대답

"볼펜이 빨간색만 있어요."


온라인 수업만 아니라면 내가 볼펜이고 연필이고 열댓 개는 선물로 줬을 텐데. 빨간색 에세이를 보고 선생님은 몇 주 동안 오만가지 생각을 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볼펜이 빨간색뿐이어서. 어디까지가 문화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사람의 영역인가. 다 큰 성인 학습자들에게 이것은 한국 문화에 좀 안 맞다고, 말을 해야 하나.


퇴근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우리 집 현관문을 열었더니, 초등학교 6학년 내 아이가 메리야스만 입고 카메라를 목에서 딱 자르게 비추고 집에서 줌 수업을 하고 있었다.

내로남불이 여기에도.


#3. 우당탕탕 앞문 난입


대부분의 교실은 앞문과 뒷문이 있다.

쉬는 시간에는 앞문과 뒷문을 보통 구분 없이 사용하지만, 수업 시간에 조용히 화장실을 간다거나, 지각을 했다거나, 조퇴를 해야 하는 학생들의 경우 '보통', '대부분' 뒷문을 사용한다. 가끔 지각한 학생이 앞문으로 들어올 때에는, '나 지각했는데 수업에 들어가도 되냐?'는 '허락을 요하는' 경우일 때가 많다. 그런데 가끔 우리 막내 라인들이(이제 갓 19살이 된) 지각을 하면서 위풍당당 우당탕탕 앞문으로 들어온다. 교실에 문이 하나인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 사실 그러한 경우도 얼마든지 살짝 들어와서 조용히 앉을 수 있다. 하지만 '꼭', '5일 중 3일을 지각하면서' 앞문으로 우당탕탕 난입한다. 우당탕탕 우영우도 아니고. 이걸 주의를 줘야 하나. 아니 이러한 행태가 거슬리는 건 내가-다소 나이가 많은-한국인이기 때문인 건가. 이럴 때마다 사실 진심으로 난감하다. 물론 나는 아무 일 없는 듯 수업을 이끌어 가고, 학생들도 잠깐 시선이 흩어지긴 하지만 학생들은 교사가 이끌리는 대로 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금세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만 나만, 주의를 줘야 하나-꼰대 같진 않을까, 한국 꼰대-한국에서 계속 살 거라면 이 정도의 문화는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닐까, 반복적으로 생각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리고 문득 저녁을 하다가 생각한다.

어쩌면 그 학생은 부끄러운 마음에, 빨리 자기 자리에 가서 앉고픈 마음만 머릿속 하나 가득이었기에, 미처 본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건 아닐까. 오히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 미안하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조차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뭐든 빨리 바람같이(라고 하기에는 소리가 크게 나지만) 지나가 버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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