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꾸 나를 작게 만들까」

by J u

나는 자주 나를 줄인다.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감정을 꺼내기 전에 한 번 더 삼킨다.
괜히 튀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괜히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크기를 조금씩 낮춘다.


그건 겸손이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깝다.

어디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오래된 방식이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나는 늘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이 어디까지였는지는
나조차 헷갈릴 때가 많았다.


괜찮은 척하는 게 익숙해졌고,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괜찮아”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나는 종종
나를 작게 만드는 게
성숙한 태도라고 착각했다.


참는 사람이 더 어른 같아 보였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더 단단해 보인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조용히 나를 안쪽에서 밀어냈다.

관계 속에서
나는 늘 덜 중요한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했다.


내 일정은 뒤로 미루고,
내 감정은 나중으로 넘겼다.
상대가 편하면 됐다고,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방식이 나를 지치게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나를 줄일수록
관계가 더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함께 있는데
혼자인 기분.
그 기분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나는 왜 자꾸 나를 작게 만들까.
아마도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래서 미리 나를 낮추면
상처도 덜 받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요즘은 그 질문을
조금 다르게 붙잡아본다.
정말 나를 작게 만들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걸까.
내 마음을 숨기지 않으면
다 무너지는 걸까.


그 질문 앞에서
예전만큼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는다.

아직도 나는 자주 흔들린다.
여전히 나를 줄이는 게 편할 때도 많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건
그 선택이 자동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쯤 멈춰서
‘지금 나는 왜 나를 작게 만들고 있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쩌면 나를 지키는 일은
더 크게 말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나를 함부로 줄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불편해 보여도,
그 상태의 나로
관계 안에 서 있어 보는 것.


나는 오늘도 연습 중이다.



나를 조금 덜 숨기고,
조금 덜 줄이고,
조금 더 그대로 두는 연습.


아직은 서툴지만
적어도 이제는
나를 작게 만드는 이유를
모른 척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나를 작게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조차
또 다른 노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괜찮아도 괜찮지 않은 척을 했던 만큼,

이제는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마저도 부담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완전히 달라진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어떤 자리에서는
말을 아끼고,
마음을 미루고,
조금 뒤로 서는 선택을 한다.
다만 예전처럼
그 선택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이게 정말 나의 선택일까,
아니면 또다시 나를 줄이는 방식일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나를 작게 만들었던 시간들은
완전히 헛된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사람의 표정을 살피는 법을 알게 됐고,
분위기를 읽는 감각도 생겼다.
다만 이제는
그 능력을 나를 지우는 데 쓰고 싶지 않다.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남되,
사라지는 사람은 되지 않는 것.
그게 요즘 내가 세우는 기준이다.
모두에게 편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적어도 나에게는
불편하지 않은 쪽을 선택해 보는 것.


아직은 어색하다.
나를 조금 더 크게 두는 일이.
괜히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관계를 망치는 건 아닐지
마음이 먼저 걱정한다.
그래도 예전처럼
그 걱정에 바로 자리를 내주지는 않는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작게 만드는 이유를
미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배려라기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고,
성숙함이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까웠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이미 나를 조금은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완전히 크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필요 이상으로 나를 접어두지는 않으려 한다.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한 번쯤은 꺼내보고,
불편한 감정이 있다면
없는 척 지나치지 않는 것.


나는 왜 자꾸 나를 작게 만들까.
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는 그 질문이
나를 몰아세우기보다는
나를 다시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오늘은
나를 조금 덜 줄인 채로
하루를 마쳐본다.


그것만으로도
이 글은 충분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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