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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Dec 20. 2023

이별과 재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26

이별과 재회


1부(部)의 끝에서 제자들과 이별할 때 짜라투스트라는 재회(再會)를 예고한다. 


"나를 버리고 그대 자신을 발견하라.  그리하여 그대들 모두가 나를 부정할 때, 나는 그대들에게 복귀하리라. "(1)


우리는 어떤 때 이별을 생각하고 이별을 하는가?  관계의 질(質)이 향상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우정에 질투와 계산이 섞이기 시작할 때, 사랑이 단순한 정념이 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별을 생각하고 이별을 한다.  지혜의 황금빛을 향해 스승이 제자를 이끌어주는 관계가 아니라, 지혜가 스승의 전유물로 간주되어 제자가 스승을 숭배하는 신도로 전락할 때가 헤어질 때다.  이때 제자는 자신의 진리를 스스로 발견하기 위해 스승을 떠나야 한다. 


한편 짜라투스트라는 제자들이 스승을 숭배하기를 거부할 때, 그의 신도가 되기를 거부할 때, 제자들이 그를 떠났을 때 오히려 제자들에게 복귀한다고 말한다. 거부당한 짜라투스트라가 그대로 돌아온다는 뜻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돌아온 짜라투스트라는 진리를 새로 깨우쳐 거듭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거듭난 스승이 역시 자신만의 진리를 깨닫고 달라진 제자를 만나는, 그런 재회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때는 내가 상실한 자들을 다른 눈을 가지고 탐색하리라. 그때 나는 그대들을 다른 사람으로서 사랑하리라. " (2)


누군가를 떠난다는 생각은 그의 부재를 다시 만날 기약 없이 감당하겠다는 결의다.  그래서 __특히 죽음이 개재되는 경우__이별은 상실이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멜랑콜릭 하다.  그래서 혹자는 “사랑하다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견디며 살아가다가, 결국 스스로도 죽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 그가 바로 호모 멜랑콜리쿠스 (homo melancholicus)다.”라고까지 말한다. (3)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작별을 한다.  그리고 모든 작별들은 잠재적으로 영원한 이별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다음은 보르헤스의 말이다: 


 “건너편 인도에서 ……  당신은 이미 돌아서면서 내게 손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 우리는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일 년 후 당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 그 사소한 작별 뒤에는 영원한 이별이 있었다.”  (4) 


모든 작별에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의 가능성이 내포된다고 하면서도 보르헤스는 죽음을 넘어선 재회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기억이 재회의 시점에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멜랑콜릭 하다.  “델리아, 언젠가 우리는 다시 서로 이어지게 되리라.  어느 강가에서? …… 우리는 한때 우리가 평원 속에 묻혀 있는 한 도시 속에서 정말로 보르헤스와 델리아였는지 자문해 보게 되리라.” (5) 


헤세가 생각하는 이별이나 작별은 재회를 내포하지 않고 있으며, 그다음 순간의 향방에 대해 일말의 의구심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의 여운이 남는다. 


“죽음의 순간에조차 아마 우리는 젊게 새로운 공간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생의 부름은 결코 그치치 않으리니……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6)


그러나 짜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이별은 전혀 멜랑콜릭 하지 않다.  재회와 관련해서 오히려 굉장히 낙천적이고 의심 없는 희망에 차 있다.  재회는 분명한 것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달라진 나와 달라진 너의 재회다. 관계 당사자의 생사 여부를 너머 시간의 어떤 특별한 성격에 의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재회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이별하고, 모든 것은 다시 재회한다.”(7) 




(1)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95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95

(3)  김동규__멜랑콜리아__서양문화의 근원적 파토스__프롤로그__26

(4)  보르헤스 전집 4__ 칼잡이들의 이야기__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__ 29

(5)  보르헤스 전집 4__ 칼잡이들의 이야기__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 중에서

(6)  헤세__유리알 유희 II__요제프 크네히트의 유고__ 176-177

(7)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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