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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Dec 16. 2023

제자는 스승을 떠나야 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25

제자는 스승을 떠나야 한다


소설 속 젊은 싯다르타는 친구이자 동료인 고빈다에게 이렇게 말하고 스승으로 모셨던 최연장자인 사문을 떠난다. “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문들 중 아마 어느 누구도 어느 한 사람도 열반에 이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네.  우리는 여러 가지 위안을 얻기도 하고, 마비 상태를 체험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속이는 교묘한 재주를 배우기도 하지.  그렇지만 우리는 본질적인 것, 즉 길 중의 길은 발견하지 못할 거야.”(1) 


비슷한 이유로 짜라투스트라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말한다. 


“내게서 떠나라!  짜라투스트라에게서 그대를 방어하라!  그리고 짜라투스트라를 부끄럽게 하라! 나는 그대들을 속였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2)


짜라투스트라는 제자들에게 스승인 자신을 떠나 홀로 가라고 한다. 그는 언젠가는 자기가 제자들을 속였다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아니, 그런 결과가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진리나 가치는 고정되어 영원한 것이 아니고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멈춰서는 것, 고정되는 것은 퇴폐의 한 징조다. (3) 그러길래 제자들만이 아니라, 짜라투스트라 역시 자기의 발전을 위해 혼자 가려고 한다.


하나의 가치나 진리는 황금처럼 부드럽고 찬란한 것으로서 스스로를 증여하는 것이며, (4) 스승이 제자를 특별히 엄선하여 전수하는 것이 아니다. (5) 깨우쳐진 하나의 가치, 하나의 진리가 영원한 것으로서 고정될 때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진리보유자와 신도의 관계가 된다.  이런 관계에서 스승은 자신도 온전히 맛보지 못한 진리를 마치 온전한 것인 양 아끼고 감추어두면서 인색하게 조금씩 떼어준다.  그리고 제자는 그 진리를 염탐하며 노리면서 이리와 고양이의 눈을 하게 된다. 이런 사태가 오기 전에 스승과 제자는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인식의 인간은 다만 그의 적을 사랑할 뿐 아니라, 다시 그의 벗까지도 미워할 줄 아는 자라야 한다.  끝내 문하생으로서만 있는 것은 스승에게 보답하는 길이 아니다.” (6)





(1) 헤세__싯다르타__1부__사문들과 함께 지내다, pp. 35-36

(2)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94

(3) “새로운 도덕, 즉 새로운 진리는 하나의 힘이고, 하나의 지배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아아, 이미 날아가 버린 도덕이 얼마나 많았는가!”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93

(4)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91

(5) 김용의 무협소설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오악 검파 가운데는 많은 멍청이들이 있다.  그들은 사부가 전수해 준 검초를 익숙하게 익히기만 하면 자연히 고수가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시 (唐詩) 삼백수를 숙독하게 되면 시를 자연히 읊을 줄 모르는 사람도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남의 시구를 숙독하게 된다면 몇 수의 엉터리 시를 지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자기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없다면 어떻게 대시인이 될 수 있겠느냐?” 김용, 비곡 소오강호 2권 p. 275 

(6)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면서도 연민이나 자기희생이나 자기 헌신과 같은 도덕의 가치에 대한 그의 입장을 결국은 허무주의에로 귀착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자신의 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쇼펜하우어를 향한 항의였으며, 이 책으로 스승과의 관계가 '배타적인 관계'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말한다. 니체, 도덕의 계보, 저자서문 5절, p.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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