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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Feb 24. 2024

순수한 봉사자 (奉仕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45

순수한 봉사자 (奉仕者)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나는 살아있는 자를 볼 때 거기서 반드시 권력에의 의지를 보았다.  그리고 봉사하는 자의 의지에서도 지배하려는 의지를 보았다.  ……약자가 강자에게 봉사함은, (자기) 보다 약한 자의 지배자이려는 약자의 의지가 그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그 쾌락은 잊을 수 없다. " (1)


니체는 모든 관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의 관계로 본다. 그가 보기에 어떤 사람이 기꺼이 강자에게 봉사하게 되는 심리는 기회만 된다면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지배자가 되려는 욕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순수한 봉사자’란 그야말로 허구적인 말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는 바 없이, 그저 사랑과 연민, 그리고 동정 때문에, 여기저기서 조용히 바쁘게 움직이는 봉사자들이 있다. 그들도 때로는 생존을 위해 강자에게 복종하겠지만, 자기보다 약한 자의 지배자가 되는 것만큼은 단호히 거부한다.  강자에게 복종하면서도 동시에 약자에게 봉사하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능하다. 


혹자는 이런 봉사자들이 지배 욕망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자기만족의 기분만큼은 즐기고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것까지, 그런 정도의 인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자기만족까지 위선이라고 탓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너무나 냉소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극히 인간적인 자연스러운 감정으로서 스며드는 미미한 자기만족마저 느끼지 않는 봉사자도 있다. 만약 “왜 당신은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 봉사를 합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는 침묵 끝에 이렇게 우물우물 대답할 것이다: “나는 그저 고통__나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__이 싫을 뿐입니다.” 


자신이 다른 약자의 지배자가 되는 경우를 상상하면서, 니체가 의미하는 ‘쾌락’__'타인의 지배자가 되는 쾌락’을 예견한다면, ‘순수한 봉사자’는 몸서리를 칠 것이다.   이런 쾌락의 배경에 있는 세계관의 협소함과 메마름에 자신이 물드는 것을 일생일대의 큰 위협으로 여긴다.  아니 어쩌면 '지배자가 되는 쾌락'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위협을 느낄만한 '자의식'마저도 ‘순수한 봉사자’에게는 애당초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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