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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Feb 28. 2024

'숭고한 사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46

‘숭고한 사람’


“오늘 나는 하나의 숭고한 사람, 정신의 속죄자 (贖罪者)를 보았노라!  오오, 나는 그가 추악해서 얼마나 웃었던고.  가슴을 펴고, 마치 숨을 한껏 들어마신 사람같이 그는 서 있었다.  숭고하게—묵묵히.” (1) 


‘사람’이 ‘숭고’하다는 건 얼마나 코믹한 관념인가! 솔직히 나는 모든 왕관__그것이 황제나 왕의 것이든, 교황의 것이든, 금메달리스트의 월계관이든__에 대하여 어설프면서도 애처로운__나는 ‘코믹’하다는 것을 이렇게 이해한다__기분을 늘 느낀다. 


‘숭고’란 절대적인 개념인데, 사람은 살아 숨 쉰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절대’로부터 한참 멀리 서서 흔들리고 있다.  도저히 숭고할 수 없는 것이 숭고해 보이는 경우, 거기에는 다분히 ‘체’하는, 연극적인, 마치 치통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고귀한 분처럼 부자연스러운 애처로움이 있다.  ‘숭고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기적을 불러올 것 같은 아우라에도 불구하고, 그를 생각할 때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과 억지스러움에 대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엄숙 가운데는 아직도 한 마리의 극복되지 않은 괴수(怪獸)가 내다보고 있다.  흡사 덤벼들려는 호랑이처럼 그는 노리고 있다.  나는 이 같은 긴장한 영혼을 좋아하지 않는다.” (2) 


‘숭고한 사람’은 그의 치통을 걱정하며 치과에 가보기를 권하는 사람이 자신의 숭고함에 오물이라도 끼얹었다는 듯 진노하며 달려들 기세를 하고 있다.  그는 치통을 호소하는__어떤 호소이든 그는 ‘떠벌리는 것’으로 생각한다__ ‘푼수’가 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해 있다.  ‘숭고한 사람’의 영혼은 니체가 너무나 잘 지적하였듯이 ‘긴장한 영혼’인 것이다. 





(1)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34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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