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한리 Chae Hanlee Mar 06. 2024

교양의 나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48

교양의 나라


"얼굴과 사지에 오십 개의 얼룩 물감칠을 한 채 너희는 그렇게 앉아 있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너희 현재의 인간들 이어!...... 누가 너희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1) 


'오십 개의 얼룩 물감칠'은 '현재의 인간'이 여기저기서 __'온갖 시대들과 민족들로부터'__주워듣고, 그럴싸한 것이라면 마치 자기가 만들어낸 것인 양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자의식에 갖다 붙인 소위 '교양'의 쪼가리들을 의미한다. 


니체에게 '교양'은 '내'가 창조한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따온 것, 빌려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의해 삶의 모범으로 삼기에 안전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나 정서를 집합적으로 칭하는 말이다.  이런 공동체의 개인들은 이 교양이라는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하며 한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런 교양의 가면, 교양의 얼룩덜룩한  옷을 벗겨버리면, 우리들, 즉 현재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까?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누군가 너희의 베일과 겉가리개와 색깔과 몸짓을 벗겨버린다면, 겨우 새나 놀라게 할 정도의 것밖에 남지 않으리라."  (2) 


현재의 인간, 즉 교양의 나라의 인간은 자기 자신을 대단한 존재인 양 착각하며, 스스로를 '현실적인 인간'이라고 자처할 것이다.  이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비웃는다: 


"<우리들은 완전히 현실적이며 그리하여 신앙도 미신도 갖고 있지 않다>고 (너희는 말한다).  이렇게 너희는 가슴을 으쓱거린다__아아, 가슴도 없으면서."  (3) 


현대의 인간은 자신이 한물간 신앙이나 미신 따위가 아니라, 교양을 충분히 갖추고 품위 있게 사노라고 가슴을 부풀리며 말한다.  그러나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은 비록 결국은 언제나 '미신'으로서 경멸당하고 집어던져지기 마련이지만, 실은 한 시대의 뜨거운 가슴들이,  한 시대의 열정적인 창조자들이 품어 키웠던 열매요 꿈이다.   그러나 가슴이 없는 자, 열정이 없는 자, 현실적인 자가 어떻게 이런 꿈이며 열매인 신앙을 창조하여 가지리요! (4) 


스스로 창조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현대 교양인들은 이미 멸망한 신앙 한 토막을 빌어, 그저 힘없이 심약하게 투덜댄다: 


"<<어떤 신이 내가 잠자는 동안에 무엇을 빼갔단 말인가?  정말 그것으로 여자를 하나 만들려고 그랬는가!  내 갈빗대가 놀랄 만큼 빈약해졌으니.>>" (5) 


현대의 인간이 이런 식으로 주절거리는 '자기 예찬'에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포복절도한다'라고 고백한다. (6)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60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61

(3)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61

(4) "너희가 어찌 신앙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61

(5)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39

(6)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39  교양인인 체하는 현대인을 보고 니체는 배꼽을 잡지만, 그가 비웃는 것은 교양 자체의 비속함, 평범함이 아니라, 현대 혹은 현재 세워져 있는 '교양과 상식의 나라'에 안주하는 정신적인 게으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숭고한 자'가 숭고함을 버릴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